벅찬 희망과 기대감으로 새천년 벽두를 맞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의 화살은 벌써 세모(歲暮)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아무리 인간세사 새옹지마 라지만 원단(元旦)에 품었던 설렘이 해도 바뀌기 전에 이토록 고통의 생채기로 변한 적이 있었던가. 텅 빈 벌판에 내팽개쳐진 듯한 단절감(斷絶感)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올해는 IMF관리체제 이후 줄곧 우리 사회의 화두가 돼온 '세계화' 를 어떤 형태로든 짚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다. 아직 세계화의 파고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지만 외형상 IMF를 졸업한 한국은 일단 지난 3년간의 결산을 서둘러야 한다.
'세계화' 로 인해 빚어진 명암(明暗)과 장단(長短)의 논란은 아직도 지구촌에서 쉬 결말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약소국의 설움인가, 우리는 '세계화'가 주는 효율성과 경쟁력 제고라는 득(得)보다는 불평등이라는 실(失)의 그늘에서 벌써부터 신음하고 있다. 사회불안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세계화'의 덫
연초만해도 우리는 '20대80 사회' 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었다. 상류층 20%가 전체 부(富)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적으로 표현한 말이지만 지금 이 수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요즘은 '2% 공화국' 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선택된 2%의 행복을 위해 나머지 98%는 희생정신으로 살고있다는 것이다. 서민들의 억눌린 페이소스가 진하게 묻어있는 은유가 아닐수 없다.
소득 불평등에 관한 이론은 갈래가 많지만 단순화 하면 크게 두가지로 대별된다.먼저, 소득은 개인의 능력과 관계된다는 것이다. 즉 교육을 많이 받거나 우수한 기능을 보유하거나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는 가설이다. 개인의 능력 향상을 위해 그만큼 투자했으므로 당연히 반대급부인 소득도 증가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를 인간자본(human capital)이론이라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이와 상반된 견해로 급진적 경향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가설이다. 소득불평등은 인간의 능력보다는 불평등한 계급구조와 사회배경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는 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경향이 있으며 기득권층과 이기집단들은 보호용 울타리를 높이 쳐놓고 자기들만의 잔치를 즐기려고 한다. ##불평등은 심화되고
투기나 주식매매 등을 통한 불로소득 집단이 독버섯처럼 돋아나고 손쉬운 방법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온갖 비리가 동원된다. 그래서 땀의 대가인 건강한 근로소득은 상대적으로 왜소해지고 국민들의 근로의욕은 땅에 떨어져 소득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된다는 이론이다.
불평등이 전자(前者)에 의한 것이라면 아무도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능력과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불평등이 후자에 의한 것이라면 사회는 분열될 것이 뻔하다. 상층부는 능력계발 보다는 부정부패한 방법으로 돈을 벌거나, 줄서기를 잘하거나, 아니면 아첨꾼으로 전락해서라도 기득권을 유지하려 할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을 시도하면 상대적 불이익을 받고 있는 서민들로부터 거센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불이익이냐" 라는 항변에 개혁주체도 할말을 잃게 된다.
우리사회는 전범(典範)이 없다. 잘잘못을 가려내는 데도 사사로운 정(情)이 개입되고 사회적 배경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니 온갖 의혹들이 끊이질 않는다. 개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개혁대상이 수긍하지 않는 개혁은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개혁은 자기부정(否定)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자기반성 없는 개혁은 폭압에 다름 아니다. 인간은 배고픈 새끼를 버리는 야생 동물과는 다르다. 집안이 어려우면 부모부터 밥을 굶어야 한다.
##부모부터 밥 굶어야
우리나라 국민들은 소득불평등이 개인의 능력보다는 '계급구조와 사회배경의 차이' 때문이라고 믿고 있듯 개혁도 계급구조와 사회배경에 따라 그 강도가 틀림없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1차 개혁의 실패원인은 여기에 있다.
이제 다시 개혁의 기치를 높인다고 한다. 계급과 사회배경에 흔들리지 않는 엄정한 개혁만이 혼란을 막는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다. '2% 공화국'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애포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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