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용(구미시장·경상북도시장군수협의회장)
예년보다 어려운 연말연시에 가뜩이나 힘든 지방 살림 챙기기에도 바쁜데 중앙으로부터 들려온 기초자치단체장의 임명직에 관한 지방자치법 개악 논의를 접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딱하기까지 하다. 지방자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부 국회의원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자칫 민주주의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과오를 범하지 않을까 뜻 있는 사람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지난 95년, 우여곡절 끝에 부활된 이후 지난 5년여의 자치역사는 어려움 속에서도 중앙 정치권과 지방정부, 그리고 주민들의 노력으로 풀뿌리민주주의를 착실하게 발전시켜 왔다. 물론 최근 일부 단체장의 잘못으로 인한 시행착오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찌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않는가?
우리의 지방자치제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문제가 있다면 국민으로부터 분명 비판을 받아야 하고 시민단체의 객관적 활동, 언론에 의해 준엄하게 심판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 하지 않은가.
원래 민주주의는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다소 소리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절차와 과정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겨우 뿌리를 내리려 하는 지방자치를 바라보는 일부 정치권의 전 근대적인 입장은 국민이 이루어낸 풀뿌리 민주주의를 뿌리째 뽑아 버리고자하는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구나 기초자치단체장의 임명제 부활이야말로 국가운영의 파행이다. 자치시대 이전의 일부 행정이 정치인의 시녀로 전락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역사는 말없이 흐르고 있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선진 의식을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주민들은 일선 시·군을 통해 정부와 처음 만나고 또 구체화된 봉사의 실체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또 생활정치와 생활경제, 편리한 삶의 모습을 찾고 자신이 직접 뽑은 단체장과 함께 지방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만들어 간다. 이것은 세계사적 흐름이며, 이러한 흐름에 역행할 때 지방의 경쟁력은 물론 국가의 경쟁력도 기대할 수 없다.사실 우리의 지방자치제는 오랜 중앙집권제의 영향으로 선진국과 같은 양질의 토양을 갖지 못했다. 흔히들 '구속의 자유화'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얼핏보면 지금의 논의는 중앙집권제가 습관화돼서 구속되어 있는 것도 몰랐던 우리 정치역사의 단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중앙의 고유권한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중앙에 맡겨둔 권한을 지방에서 되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의 권한은 풀뿌리민주주의의 현장으로 더욱 이동되어야 한다.
어렵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지방자치의 길로 나아가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거기에 따른 고난과 어려움은 겪으면서도 다듬어서 가야한다. 부족한 점도 인정하면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주장할 것은 주장하는 그런 자치, 그런 민주주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출발점에 있지 않은가?
조그만 중소도시의 기초자치단체장으로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한 사람 자연인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 좀 낡고 닳아빠진 복식을 제발 벗어버리라"고. 또 "새해에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오류를 제발 좀 범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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