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 국무장관 지명자는 자메이카 이민의 아들로 뉴욕 빈민가에서 성장했으나 대통령 안보 보좌관을 거쳐 미국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에 오르게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1996년 언론들에 의해 클린턴을 대체할만한 최적의 대통령감으로 지목된 바도 있다.
그는 다양한 계층의 존경을 받는데다 당파에 연연하지 않고 명예를 존중하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의회의 인준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국민적 인물로 부상하게 된 것은 걸프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부터. 1993년 퇴역 후에는 청소년 운동단체인 '미국의 약속'(America's Promise) 회장으로 활동해 왔다. 하지만 부인 앨마와 아들 및 두 딸 등 가족을 매스컴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며 공직 출마를 고사해 왔다.
파월은 1963년 케네디 대통령 때 월남전에 참전했고, 1969년 워싱턴의 군사령부로 이동한 뒤 국가 안보보좌관을 거쳐 1989~93년 사이 합참의장으로 레이건·부시·클린턴 등 대통령 3명을 보좌했다.
안보보좌관과 합참의장을 거치면서 '파월 독트린'의 가닥을 잡아, "불가피하게 해외 분쟁에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되면 미국은 명료한 정치적 목표를 세운 뒤 압도적 군사력을 동원해 최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가 세워졌다. 이것이 앞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파월은 그러나 사회 분야에서는 △낙태 찬성 △총기규제 지지 △소수민족 보호 지지 등 전반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보여왔다. 그는 댄 코츠 전 상원의원을 밀고 있는 체니 부통령 당선자와 달리 국방장관에 톰 리지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국방장관 및 안보담당 보좌관은 미국 국가안보를 관장하는 3인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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