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이맘때의 소란과 광기와 아우성을 기억하십니까? 입 있는 자는 새 천년이 시작된다고 다 한마디씩 하니 천지에 그 말이 가득하여 머리 둘 곳이 없었다. 그것은 발광이었다. 마치 새 천년에는 지구가 낙원으로 변하기라도 하듯 전 세계가 미쳐서 날뛰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과연 새 천년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덩달아서 함께 꼴사나운 곱사춤을 추었던가. 게다가 우리는 그것에다 가당치도 않은 의미를 더 부여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고,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다.
끝도 시작도 없는 우주의 저 무한한 순환에서 본다면 천년은 무엇이며 백년은 무엇인가. 그러함에도 촉새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2천500년 전에 공자는 인간들의 이 꼴사나운 호들갑을 보고 점잖게 한 마디 했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네 계절이 운행되고, 수많은 사물들이 생장하는데,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때가 되면 어김없이 사시가 바뀌고 만물이 분수에 따라서 생장하고 소멸하는데 하늘은 한 마디의 말도 한 적이 없었다. 인간들이 공연히 그것을 봄이니 여름이니 이름 붙이고, 인간들이 공연히 그것을 생장이라 하고 소멸이라 할 뿐이다.
우리를 다스리는 잘난 분들은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고 남북이 화해하여 통일이 성큼 다가설 것이며, 경제성장이 어떻고 하면서 장밋빛 설계로 백성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새 천년의 첫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그분들의 호언장담의 그 결과는 어떠한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경제난국에다 통일은커녕 북의 담장은 오히려 튼튼한 옹벽으로 변했을 뿐이다. 가만히 내버려두었으면 흔들흔들하다가 제풀에 넘어졌을 지도 모를 집단을 하나의 당당한 국가로 발돋움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통일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어 이제는 혹시나 하는 희망도 품어서는 안될 듯 싶다. 뿐인가, 경제성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수많은 가장들이 일터에서 쫓겨나서 춥고 우울한 세모(歲暮)를 보내야 하는 것은 도대체 어찌 된 노릇인가.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 백성이 염치를 모르는 백성이 되어간다는데 있다. 장사꾼이 저울을 속이고도 이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농사꾼이 제때에 밭을 갈지 않고도 이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관리와 힘있는 자들이 백성의 돈을 도둑질하면서도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 나라, 이것이 우리나라이다.
은행을 감독하라고 앉힌 자들이 감독은커녕 금고째 꿀꺽하고 이것을 잘못되었다고 하면 다시 그 위에다 또 감독자를 두고, 백성의 마음이 떠나가니 뒤늦게 강도 높은 사정(司正)운운한다.
공자는 말한다. "법으로 백성을 인도하고 형벌로써 그들을 안돈(安頓)시키면 백성은 잠시 죄를 면하고자 할 뿐 염치를 모르게 된다".
백성이 왜 복종하려 하지 않는가. 그릇된 자들을 뽑아서 정직한 사람들 위에 두니 백성이 복종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새 천년의 첫 해가 헛되이 지나가려 한다. 모쪼록 이번 세모가 조용하고 차분하게,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다보는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염치를 아는 백성, 스스로 중용(中庸)의 길로 나아갈 줄 아는 스승,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배를 가를 줄 아는 관리,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치자(治者), 남은 재산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훌훌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가는 재산가,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살 수만 있다면 비록 어렵고 가난하다한들 무엇이 부럽겠는가.
한양대 교수·작가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