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생활화된 오페라
화려한 무대, 가슴 파고 드는 감동적 선율, 나비 넥타이 파티 차림의 신사들, 어깨 드러낸 이브닝 드레스로 우아함을 뽐내는 숙녀들… 이국에서 보는 오페라는 공연장 분위기만으로도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오페라를 평소 즐기지 않던 여행객들까지 청바지 차림으로나마 기어코 보고 가겠노라 고집하는 것도 바로 이런 묘미 때문일까?
오페라의 본고장 밀라노에선 더욱 그랬다. 엔리코 카루소, 베냐미노 질리, 마리아 칼라스 등 전설적인 성악가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했던 곳. 세계 최고의 오페라 하우스로 이름난 스칼라 극장은 현지인은 물론 동서양과 피부색을 가리지 않는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지금 그곳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베르디였다. 주제페 베르디(1813~1901),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 스칼라 극장은 아예 올 시즌 주제를 '베르디를 위한 스칼라'로 내걸고 있었다. 내년이 베르디가 밀라노에서 숨 거둔지 꼭 100년 되는 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 트로바토레'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맥베스' '오텔로' 등 그의 명작들이 내년에 계속 스칼라 무대에 오를 예정이라는 얘기였다.
"전 이탈리아가 베르디 추모 열기에 휩싸여 있다"고 알려 준 세르지오 오솔리니(68)씨는 폐수 처리 화학회사를 경영하면서도 음악에 조예가 보통이 아니었다. "몇년 전 스칼라 극장에서 본 정명훈씨의 지휘가 너무나 감명 깊었습니다". 미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정명훈이 거쳐간 공연장들을 줄줄이 댈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는 음악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 위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오페라를 좋아해 매년 4, 5번은 스칼라 극장 공연을 본다는 변호사 로베르토 트로바토(40)씨는 패션 거리 몬테 나폴레오네와 만쪼니 거리 사이에 있는 한 호텔로 안내해 줬다. 너무 평범해 보여 현지인이 아니고선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나지막한 건물. '밀라노 그란데 호텔, 1863'이라는 간판이 붙은 그곳은 바로 베르디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이라고 했다.
"베르디가 운명했던 호텔 방은 사용이 금지돼 지금도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한 당시 사람들은 그에 대한 경의와 존경의 표시로 이 호텔 앞을 지나갈 때 조용히 소리를 죽였죠".
이탈리아 사람들이 베르디를 끔찍이 생각하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도시국가로 흩어져 외세의 지배와 탄압이 혹독했던 시절, 베르디는 민족의 투쟁과 승리에의 희망을 오페라에 담아 이탈리아인의 조국애와 독립 의지를 일깨웠던 것. 그래서 그는 독립과 통일을 열망하는 국민들로부터 혁명의 기수로 떠받들어졌다.
그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노예들의 합창'은 독립운동 당시 애국가 처럼 애창되던 노래였다. '베르디'라는 이름은 통일의 기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자는 뜻이 담긴 암호문으로 통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1870년 통일 이탈리아가 탄생했다는 것이었다.
해마다 '5월음악제'가 열리면 전세계 음악가들이 아르노 강가로 몰려드는 아름다운 꽃의 도시, 르네상스 발상지 피렌체 곳곳에서도 베르디의 오페라 공연 포스터는 볼 수 있었다. 아르노 부두에서 조금 걸으니 바르디 귀족 가문의 고풍스런 저택이 나왔다. 그곳이 400여년 전 오페라가 태동했던 역사적인 곳이었다.
광대한 영토를 가졌던 이 가문의 귀족 지오반니는 인문주의자이자 음악 애호가로, 고대 그리스문화에 심취해 있었다고 했다. 1590년쯤 그는 자신의 집으로 예술가들을 불러 모아 그리스 비극을 어떻게 부활시킬 수 있을는지 방법 찾기에 골몰했다. 온갖 실험적인 창작과 작곡이 시도됐고, 훗날 '오페라'로 불리게 될 장르의 첫번째 작품이 바로 그 과정에서 나왔다는 얘기였다.
그 모임은 동지라는 뜻의 '카메라타'로 불렸으며, 거기에는 위대한 수학자 갈릴레오의 아버지 빈첸조 갈릴레이도 포함돼 있었다고 했다.
오페라 발상지의 국민답게 이탈리아 사람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도 남달랐다. 어느 장소에서건 기분만 내키면 전문 테너.소프라노 뺨치는 목소리로 멋들어지게 오페라 곡을 부르는 사람들을 드물잖게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 가구의 미국 수출 일을 하는 루치아노 아이롤디(64)씨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했다.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천재라고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밀라노 인근 메라떼에 살고 있는 그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환상적으로 손가락을 놀리며 굵은 바리톤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솜씨가 전문가 못잖았다. 기자도 어설프지만 피아노를 약간 칠 줄 알아 악보를 좀 보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가지고 있는 악보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럴 리가?
하지만 그는 악보를 볼 줄도 모르며, 피아노 치는 걸 누구로부터 배운 적도 없다는 것 아닌가! "8세 때 아코디언 연주하는 걸 혼자서 익혔습니다. 그 뒤엔 신부님이 성당 오르간 반주를 해보라고 해서 못한다고 했더니, 3일간 시간을 주겠다고 하시더군요. 왼손으로 화음을 짚듯 연습했더니 3일만에 연주가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피아노 연주까지 하게 된 그는 귀로 듣는 모든 음악을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다고 했다. 기자가 우리 가곡 '봄이 오면'을 불렀더니 그는 소리만 듣고는 바로 반주를 맞춰줬다.
음악의 나라 이탈리아. 어느 도시 할 것 없이 해마다 크고 작은 음악축제가 열리는 그곳에선 화려한 무대에서든, 평범한 가정에서든, 어디서나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예술가적 기질이 넘쳐나고 있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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