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을 가로질러 하얀 깃털같은 것이 비상한다. 어느 시인의 못다한 영감일까. 어느 연인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념일까. 뒤이어 수많은 깃털들이 편대를 이뤄 날아오른다. 자세히 보니 민들레 씨앗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당 저편에 우리 집 막둥이가 민들레 대궁을 손가락으로 튕기고 있다. 어떻게 알아냈을까. 대궁을 튕기면 탐스런 솜방망이 같은 민들레 씨앗이 흩어져 날아오른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적에 민들레며 봉숭아 씨앗을 터트리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따사로운 골목길을 따라 민들레 씨앗을 튕기며 이사간 동무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읍내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기도 하고, 그 때도 햇살은 따사로왔지만 배고프던 겨울 오후를 그렇게 달래곤 했다. 그래도 민들레 씨앗을 처음 본 막둥이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쩌면 그 자신이 알아낸 것이 아니라 씨앗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을 지도 모른다.
씨앗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므로 움직이는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보다. 씨앗은 지난 여름의 화려하던 꽃에 대한 기억이니까, 그 씨앗이 내린 자리에는 어김없이 민들레꽃이 피어날 것이다. 씨앗은 다시 꽃피우고 싶은 희망이니까, 티없는 아이들의 마음을 일깨우는가 보다. 씨앗은 어디든 새 땅에서 새로운 생존을 이어가야 할 신념이니까, 우선 새 하늘로 치솟아야 하는가 보다.
우리 삶도 어쩌면 하나의 솜털 같은 씨앗이 피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 삶의 씨앗이 간직해온 기억을 되살려 희망을 꽃피우고, 희망을 실현하는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신념이 굳어질 것이다.
나도 막둥이를 따라가며, 그가 못다 날린 민들레 씨앗을 날려본다.
대구가톨릭대교수 신창석.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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