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減資책임, 묻기 어렵다니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날리고도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던 정부가 문책요구 여론이 물끓듯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책임자 문책지시가 나오긴 했지만 결과는 용두사미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금융감독원 등 관계당국은 대통령의 지시로 일단 책임규명 작업에 착수하긴 했지만 이미 예상한 데로 법적 근거 등이 불분명해 현실적으로 문책이 어렵다는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 주변에선 대통령의 문책지시도 다분히 "민심 수습용"이란 비판과 함께 일부 은행장들의 인사물갈이 수준으로 매듭지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울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혈세를 이렇게 허투로 써도 책임질 사람이 없고 은행자본을 몽땅 집어삼키고도 아무렇지도 않은듯 넘어간다면 국민들이 어떻게 정부를 믿어야할지 알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문제의 책임은 먼저 김대중 대통령부터 통감하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몇번씩이나 선언한 김 대통령이 이런 엄청난 공적자금이 날아가버린 사실을 몰랐다면 무엇을 챙겼는지 묻고싶다. 이번 문책지시 과정에서도 "책임져야할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고 한 것은 국민의 시각에선 대통령이 문책의 당위성을 절감한 것으로 보이지않고 다분히 국민의 여론에 떠밀려 책임을 묻는 느낌을 준다.

공적자금 허비에 대한 문책은 결코 어물쩍넘겨선 안된다. 항간의 소문대로 민심수습용 은행장 물갈이나 힘없는 관련 전직 공직자에 대한 솜방망이 문책 수준으로 끝난다면 국민의 분노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렇다고 마녀사냥식의 희생을 강요하는 문책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 대통령의 문책지시대로라면 경우에 따라선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책임을 묻는 꼴이 될 수도있다. 재정경제부·금감위·금감원 등의 당국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문책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이들로 하여금 문책대상을 선별토록한다면 누가 누구를 문책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해서는 엄정한 문책이 이루어질 수도 없다.

김 대통령은 먼저 문책대상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심사할 장치부터 마련하고 이를 통해 책임을 묻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벌써부터 "정책실패를 어떻게 책임진단 말이냐" "대출 책임도 분산된 마당에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은 엉성한 문책지시만으론 흐지부지될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추후 감자는 없다"는 발언과 투자자에게 잘못된 정보제공 등 증거가 분명한 것부터 확실한 문책이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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