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조파업...발목잡힌 금융 구조조정

금융노조와 정부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금융지주회사 편입은행 노조들의 요구가 수용된 반면 국민·주택은행의 합병문제는 타결되지 않았다.

이번 협상에서 정부는 구조조정의 명분을 얻었고 노조는 실리를 취했으나 정부쪽에서 너무 많이 양보, 개혁의지를 무색케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금융지주회사 편입은행의 구조조정을 8개월 정도 늦춰주고 노조는 정부주도의 지주회사를 수용하는 선에서 접점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 구조조정의 또 다른 핵심사항인 국민·주택은행 통합은 두 은행 노조가 22일 파업에 돌입함에 따라 현안으로 불거졌다.

◇한빛주도 지주회사 걸림돌 제거= 정부는 당초 한빛은행 중심의 지주회사에 편입되는 평화.광주.경남은행의 기능재편을 내년 10월까지 마무리짓고 단일은행으로 출범시킨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2002년말까지 은행의 독립성을 유지, 경영정상화의 기회를 달라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2002년 3월말까지 컨설팅 작업을 통해 기능재편 최종결과를 도출한 뒤 이를 토대로 그 해 6월말까지 노사 협의를 통해 통합을 완료하기로 했다. 당초 정부 방침에 비해 8개월 정도 여유를 더 줌으로써 인력과 조직의 존속을 가능하도록 한 셈이다.

이 기간 이들 은행에 대해서는 최대한 독립성을 보장하기로 했다. 또 경영전략, 점포운영 등 통상적인 범위내에서 경영권도 갖도록 했다. 이들 은행의 간판을 2002년 6월까지는 그대로 유지시켜 준다는 것이다. 인력감축 여부는 노사 자율협의에 의해 결정하되 반기별로 출자약정서(MOU) 이행상태를 점검해 추가적인 공적자금의 투입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국민·주택은행 합병= 이번 협상에서 타결되지 않아 두 은행 노조가 파업에 돌입함에 따라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금융노조와 정부는 우량은행 합병에 대해서는 지난 7월 노.정 합의에서 밝힌 '노.사간 자율적 협의 존중'이라는 틀을 재확인했다. 노조는 국민.주택은행 합병 등 우량은행 합병에 정부가 너무 깊숙이 개입한다고 반발해왔으나 정부는 두 은행의 합병 협상에 개입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금융노조는 두 은행 합병이 완전 백지화될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은행 이경수 노조위원장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협상을 벌이면서 국민·주택은행 행장과 노조위원장, 금융산업노조위원장 등 5자 회담을 두 은행 행장에게 요청했으나 어떤 응답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상훈 국민은행장과 김정태 주택은행장은 합병추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고 골드만삭스와 ING그룹 등 대주주도 이를 원하고 있어 합병 협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때문에 두 은행간의 합병문제를 둘러싼 노·정, 노·사간의 대결은 극적인 타협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조기해결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발목잡힌 구조조정= 이번 노.정 합의로 일단 평화.광주.경남은행의 금융지주회사 편입 장벽은 해소됐지만 당초 정부 계획보다 8개월 정도 통합이 늦어지는 바람에 그만큼 구조조정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됐다.

특히 이들 은행에 투입되는 5조5천억원 정도의 공적자금중 일부는 2002년 6월까지 유지되는 과잉 인력.점포 유지비로 흘러들 수 밖에 없어 '국민혈세'가 낭비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단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6%에 해당하는 공적자금을 1차 투입한 뒤 MOU상의 인력.조직감축 계획 이행상태를 봐가며 추가 투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행실적이 부진하다고 해서 추가투입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적시에 부족한 자본금이 충족되지 않아 은행이 부실화하고 이때문에 퇴출을 결정한다면 이미 투입한 공적자금을 날리게 되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단계마다 노조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도 큰 부담이다. 인력감축을 노.사협의하에 결정토록 한 데다 2002년 6월 기능재편때도 노.사 협의를 명문화함으로써 정부 스스로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력감축이나 기능재편때 노.사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고 그렇게 되면 다시 시간과 힘을 소진해야 한다.

천문학적인 국민혈세가 투입되는 금융구조조정이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개혁을 하지않는 편이 오히려 공적자금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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