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남북회담과 대북 전력지원 방향

평양에서 열린 제4차 남북 장관급회담은 남북경제협력 추진위원회 설치 등을 합의하고 종료되었다. 이번 장관급 회담에서는 지난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진행된 분야별 남북관계 일정을 총결산하고 신년도에 추진될 남북관계의 방향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이번에 경협 추진위원회를 구성키로 하고 관련 협정에 서명을 한 것은 남북경협의 추진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남북협상이 지나치게 경제협력 쪽으로 치우쳐 중요한 이산가족 문제나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 등의 문제가 다루어지지 않은 점은 문제점으로 남는다.

북한은 제4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그들의 극심한 전력난을 내세워 우선 50만㎾의 전력 지원을 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이로 인해 회담이 결렬 상태까지 가는 등 심각한 난항을 겪었다.

이번 장관급 회담에서 북측이 전력 지원문제를 강력하게 요청한 것은 전력사정이 그만큼 다급해졌기 때문이다. 1999년 기준으로 북한의 발전 능력은 739만㎾로 남한(4천698만㎾)의 약 6분의1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 가동률은 전체 발전 능력의 29% 수준에 불과하며, 수력발전소는 갈수기에는 가동이 어려워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하지 못해 계절적으로 전력난에 시달린다. 또한 화력발전소의 경우 석탄을 연료로 쓰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력생산은 가능하지만 현재 석탄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마저 정상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노후화 된 발전설비와 송배전 시설의 낙후 등도 북한 전력난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북한의 지원요구에 대해 우리 내부에서는 북한의 자세변화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엄청난 자금조달이 요구되는 전력지원 문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정부도 전력지원이 쌀이나 비료처럼 쉽게 지원할 수 있는 물자도 아니며 대북 지원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그러나 북한의 전력 부족이 워낙 심각해 북한의 요구를 무조건 무시하는 경우 남북관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걱정하고 있다. 정부는 남북경협이 순조롭지 못할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문 등 예정된 남북관계 주요일정에 차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지난 3월 베를린 선언에서 정상회담에 응하는 조건으로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대해 지원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고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성사됐으므로 북측의 지원 요구를 무조건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국민의 여론을 무마하면서도 북한의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곤란한 입장에 놓여있으나 북측이 공식 요청한 전력 지원 문제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한다는 대북 지원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과 우리의 어려운 경제사정 등을 감안할 때 대북 지원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얻는 게 선결 과제인 것 같다.

또한 식량지원과는 달리 전력지원의 비용(50만 ㎾의 경우 추정지원비용은 7천억원)은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 부담능력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일부의 주장과는 달리 한전은 "수요량을 감안해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남는 전력은 사실상 없다"고 밝히고 있고 남북한의 송배전 선로 계통이 완전히 다른데다 북한의 송배전 선로가 상당히 노후화 돼 있어 기술적으로 문제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전력 공급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전력지원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정부 비축분 811만t을 포함한 1천만t에 달하는 국내 무연탄 재고분의 활용도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술적인 문제로 전력지원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의 북한의 전력난을 해소하는 데에는 무연탄 등 발전연료의 공급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대북 지원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감안, 여론에 역행하는 지원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당분간 전력지원 문제 때문에 남북대화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더라도 정부는 국민들의 대북 정서를 이해시켜 북한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하며, 동시에 우리 국민들에게는 대북 경협이 결코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며 남북관계의 정상화와 남북 경제공동체의 실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중앙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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