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풀 죽은 송년 모임

지난 15일 송년모임 겸 동갑계에 나갔던 공무원 윤모(52.남구 봉덕동)씨는 아직도 우울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향친구 28명이 10여년 동안 끌고온, 언제나 웃음이 넘친 모임이었지만 이날은 3명이나 빠져 있었다. 건축업을 해온 친구는 부도 이후 스트레스로 시름시름 앓다 지난달 세상을 떴고 농사꾼인 한 친구는 맞보증 후유증으로 생고생을 하다 5개월전에 쓰러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유통업을 하는 다른 친구는 부도 이후 잠적해 연락이 끊어진 상태. 이날 동갑계는 평소 2,3차까지 가던 관례를 깨고 저녁식사와 소주 몇잔으로 끝냈다.

양모(34.수성구 지산동)씨도 지난 16일 고교 동기모임에 참석했다 예년과 다른 분위기에 기분을 잡쳤다. 세달에 한번씩 열리는 동기모임에 20명중 10명만 참석한데다 1년동안 한차례도 나오지 않았던 한 친구가 술자리 도중 보험상품 안내장을 보낼 주소를 요구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자신이 다니던 자동차사가 퇴출돼 카드사로 자리를 옮겼다며 회원가입을 권유했다. 이날 분위기는 자연 어색하게 돌아갔다연말을 맞아 한창 열리고 있는 동창회, 친목계 등 각종 송년모임. 예년 같으면 모두들 열일을 제쳐놓고 모여 앉아 왁자하게 한해를 회고하며 회포를 풀 송년모임이 불경기와 구조조정 여파로 눈에 띄게 예전같지 않다. 참석자도 크게 줄고 분위기도 가라앉아 아예 내년으로 모임을 미루는 경우도 적지않다. 40, 50대 모임에서는 직장생활 스트레스나 부도 후유증으로 졸지에 세상을 뜨거나 병원신세를 진 얘기가 주요 화제거리다.

은행원인 김모(42.중구 동산동)씨는 "요즘 송년모임은 친구나 회원들 가운데 죽거나 잠적한 얘기가 빠짐없이 등장해 대부분 떠들고 놀 분위기까지 못간다"며 "참석자가 크게 줄면서 모임자체를 해체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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