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지방 마다 음식이 다양해 불과 몇 ㎞만 떨어져 있어도 요리 방법이 달라질 정도죠". 치과의사 프랑코 브렌나씨는 포도주를 홀짝이며 음식 얘기에 지칠 줄을 몰랐다. 오후 2시가 지났는데도 식당엔 점심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호수가 아름다워 휴양지로 이름 나 있는 최북단 코모. 전지를 발명한 볼타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이곳을 여기저기 안내해 주던 그는 주문한 요리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하도 음식 얘기를 열심히 해 시장기를 더 느끼게 만들었다.
"코모는 이탈리아에서 음식이 가장 형편없는 지역입니다. 인접한 스위스 쪽은 산으로 막혀 있는데다, 호수 지역이라 옛부터 생선 말고는 먹을 게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 지역 전통 요리라고 주문한 음식은 정말로 볼품 없었다. 호수에서 잡아 올렸다는 생선들이 별다른 양념없이 익혀져 나왔다. 그냥 소금 간 해 말린 것들이었다. 그 중에는 우리가 더러 튀겨 먹는 빙어도 있었다. 너무 짰는데도 현지인들은 맛있게 한 접시를 후딱 먹어 치웠다.
피자.스파게티.와인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 그곳은 지방색이 강한 만큼이나 음식 종류도 다양해 이방인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안겨줬다. 음반 LP판처럼 납작하고 동그랗게 생겨 '오선지'라 불리는 사르데냐 섬 지역 전통 빵 '카르타 다 뮤지카' 등 지역마다 특색있는 향토 요리가 많아 놀라웠다.
"북부 사람들은 추운 날씨 때문에 열량을 높이려 쌀로 만든 리조또를 많이 먹습니다. 반면 남부 사람들은 파스타를 더 즐기는 편이죠". 밀라노 인근에 사는 존루까 아자리오씨는 쌀을 버터나 올리브유로 볶는 리조또도 닭고기.해산물 등 함께 넣는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파스타도 스파게티처럼 면이 굵고 긴 것에서부터 나비.나사 모양 등 종류와 맛이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대학생인 귀도 지로니씨는 자신이 즐겨 가는 피자집에는 피자 종류가 200가지나 돼 입맛대로 골라 먹으면 된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코모 지역에 있는 고풍스런 호텔 '빌라 데스테'의 한 요리사는 피자를 "이탈리아의 상징"이라고 했다. "2차대전 후 미국에 소개돼 대중화 됐으나, 원래는 나폴리 가난뱅이들의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피자 위에 얹는 재료들의 빨강.하양.녹색은 이탈리아 국기 색과 같다는 재미있는 해석도 곁들여졌다. '피자헛' 등 미국식 피자에 입맛이 길들여진 우리에겐 얄팍한 밀가루 반죽 위에 짠 생선.멸치젓까지 재료로 올려지는 이탈리아 피자들이 새롭기만 했다.
자기네 음식을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그곳 사람들은 먹는데 대한 애착도 대단했다. "먹는 것 빼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먹는 즐거움을 최고로 치고 있었다. 당연히 먹는데 투자하는 시간도 많을 수밖에.
아침 식사는 거품 낸 뜨거운 우유를 탄 카푸치노 커피 한잔에 비스킷이나 빵 한조각이 고작이었지만, 점심.저녁 때는 2~3시간씩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저녁은 오후 8시, 심지어 10시 넘어 시작하는게 보통이어서, 식사 사이에 커피와 샌드위치.케이크 등 간식을 즐기는 경우까지 흔했다.
모두들 밤 늦게까지 식사를 하다 보니 피아노바.디스코클럽 등도 밤 11~12시가 넘어서야 문을 여는 곳이 많았다. 외지인의 왕래가 적은 소도시로 갈수록 그런 현상은 더 심했다. 밀라노 인근 바레제에 갔을 때 그곳 젊은이들의 밤 문화를 엿볼 양으로 오후 8시가 넘어 디스코클럽을 세군데나 돌아 다니고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같으면 미안해서라도 받아줄 법 했지만, 그곳 종업원들은 냉정하게 잘랐다. "새벽 1시에 문 여니까 그때 오세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식사 양도 엄청났다. 한때 음악가 모짜르트가 살았던 밀라노 모짜르트 거리에 있는 '빌라 모짜르트' 식당에 갔을 때였다. 300년된 고풍스런 식당 안에 잔뜩 걸린 현지 화가들의 그림들을 쳐다 보느라 정신 없는 중에, 나오는 요리까지 호화찬란해 또한번 놀라고 말았다.
우선 샴페인과 식전주로 마시는 붉은 빛 '캄파리'가 나오더니, 와인.빵.수프.리조또.샐러드.고기 요리.케이크.커피가 이어졌고, 식후 소화를 돕는다며 45도 짜리 술 '그라파'까지 끝도 없이 음식이 나왔다. 요리 한 그릇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양이 많았지만 종업원은 계속 음식을 들고 와 "더 먹겠느냐"고 권해댔다.
그러나 그처럼 많이 먹으면서도 뚱뚱한 사람은 많잖은 게 신기했다. 그 식당을 소개해 준 파올로 스코파치씨는 "이탈리아에선 버터 보다 올리브 기름을 많이 쓰고, 감자를 많이 먹지만 미국 사람처럼 기름에 튀기지 않고 살이 덜 찌게 요리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 여러 소스를 많이 첨가하지 않은 싱싱한 야채와 생선을 많이 먹는다고 했다. 파는 생수도 소화를 돕느라 탄산가스 든 게 인기 있었다. 이탈리아는 대단한 와인 생산국이면서도 수출하기 보다는 대부분 자국 안에서 소비되는 점도 특이했다. 이탈리아 음식에는 이탈리아 와인을, 특히 독특한 향토 요리에는 그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을 써야 두배의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지독히도 자기 나라 음식을 사랑하다 보니 외국 식당들은 거의 발 붙이기 힘든 것 같았다. 세계 각지 관광객과 기업인들이 수도 없이 몰려드는 국제 도시 밀라노에서 조차 한국.중국.일본 등 외국 식당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가끔 한국식당에 간다는 로베트로 트로바토씨는 그런 동포들을 비판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탈리아 음식이 프랑스 것 보다 뛰어나고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나라 음식을 싫어해서야 이치에 맞을 수 있겠습니까? 각 나라 최고의 음식이 있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정말 어리석은 생각 같습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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