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장총재 사퇴는 '對北 저자세'

대한적십자사 장충식(張忠植) 총재가 취임 5개월만에 총재직을 내놓고 물러나는 것을 지켜보는 우리의 시각은 착잡하다. 장 총재 개인에 대한 평가는 그만두고라도 북한의 퇴진요구에 꼼짝없이 끌려가는 정부의 줏대없는 모습이 급기야 장 총재 퇴진사태를 초래한 것같아 답답하다. 북한은 지난달초 평양방송을 통해 장총재 경질을 요구했고 지난 2일에는 서울에 온 장재언(張在彦) 북적중앙위원장으로부터 "장 총재는 죄에 죽고 올바르게 재생해야 한다"는 등 독설을 들은 끝에 장 총재가 사퇴하는 등 사건의 전말을 따져볼때 우리 정부가 북한에 질질 끌려다닌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장 총재의 월간지 인터뷰 기사를 빌미로 북한이 시비를 벌일때 정부는 단호하게 나서 장 총재의 인터뷰 내용은 부분적으로 부적절한 표현이 있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북한을 이해하는 따뜻하게 대하자는 것이었음을 설명하고 당당하게 대응했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북한에 몰래 "사과편지를 보내는 망신스런 일을 했고 2차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는 상봉의 남한측 당사자인 한적 총재가 일본으로 도피, 북측으로부터 몰골이 가련하다는 막말까지 자초했다. 그러고는 급기야 총재까지 갈아치웠으니 이것이 무슨 꼴인가 말이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떻든간에 결과적으로 한적 총재의 사퇴로 남쪽의 고위인사가 북측 '요구'에 따라 자리를 물러나는 사상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은 분명 문제다. 더군다나 북한이 남북대화의 대전제인 내정 불간섭의 원칙마저 무시하고 끝내 총재 경질을 고집했고 결과적으로 이것이 총재 퇴진과 맞아떨어짐으로써 북한이 이제는 한적 총재의 인사권마저 행사하는가 하는 의아감마저 갖게된 것은 말이 안된다.

정부는 남북대화를 하면서 시종일관 양보만 거듭하다 급기야는 주권마저 침해당하는 꼴을 자초하고 있으니 이러고도 주권국가의 공직자라할 수 있을는지 의심스럽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한데 대해 대북 정책을 주도해온 정부 관계자는 책임을 통감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한적사태가 북한의 무분별한 요구와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에도 원인이 있지만 동시에 대한적십자사가 최소한의 독립성과 자율성 조차 갖추지 못한데도 원인이 있음을 지적지 않을 수 없다. 한적은 겉으로만 순수 민간기관이지 사실상 국정원과 통일부 같은 정부기관의 하부기관 취급을 받아오다시피 했다. 이번 장 총재 사퇴도 한적이 정부기관과 정보를 공유, 협조체제를 공유하면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데 일부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런만큼 한적의 고유기능과 권한 회복이 앞으로 큰 숙제로 남겨져 있음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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