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대구.경북지역 섬유업계는 줄초상을 겪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굵직굵직한 업체들이 무너졌다. 다음은 누구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고 실제 사실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난 5월 새한이 워크아웃을, 금강화섬이 화의를 신청했을 때 다음은 대하합섬이라는 설이 나돌았다. 대하합섬은 이로부터 불과 두달여만에 부도→법정관리 신청 절차를 밟았다.
사주가 대구상의 회장이라는 점에서 지역 경제에 위기감을 안겨줬던 대하합섬 부도는 결국 지난달 법정관리 신청이 폐지되면서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
연간 5천만달러 정도 직물을 수출하던 대구 성서공단내 대경교역의 지난달 부도는 섬유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지역에서 가장 탄탄한 기업이란 평가를 받았던 이 회사는 리스사가 통상적인 거래 관행을 깨고 황색등록을 해버리는 바람에 예상치도 못했던 부도를 냈다. 정우영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이사장은 "연간 5천만달러를 수출하는 업체를 만들려면 2대까지 가야 할 정도로 공을 들여야 한다"며 "이런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은 업계의 엄청난 손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올해 대구지역 섬유경기는 최악이다. 지금까지 섬유경기는 불황을 겪다가도 어느 시점이면 호황으로 접어드는 순환국면을 걸어 불황이 닥쳐도 큰 걱정을 안했으나 지금의 섬유경기는 어느 시점이 불황의 끝인지도 모른채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달리 대책이 없다고 섬유인들은 아우성이다.
불황의 시작은 재고과잉에 따른 덤핑 수출. 이는 올해들어 수치상으로는 수출 물량이 늘었으나 채산성이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야드당 1달러 미만에 수출되는 직물이 수두룩하다.
이는 화섬직물이나 원사업체 모두에 해당된다. 워낙 재고가 쌓여가자 국내 12개 원사메이커들은 지난 6월 20%씩의 자율 감량을 하기도 했다.
원사업계는 현재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SK케미칼과 삼양사가 폴리에스테르 사업부문을 통합, 매출 1조원 규모의 국내 최대 화섬업체 '휴비스'를 지난달 1일 만들었고 한국합섬과 미국 유니피사도 폴리에스터 합작사를 설립키로 한데 이어 다른 업체들도 인수.합병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직물업체들의 사정은 더 어렵다. 섬유업체들이 생산한 직물을 비축시키는 창고 역할을 하는 대구 성서공단의 직물협동화사업단은 현재 입고 물량이 늘어나면서 창고가 모자라 일반 기업체의 창고를 빌려 쓰는 실정이다.
불황의 또다른 요인은 중국의 등장.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가장 강력하게 우리 섬유업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했다.
얼마전까지 양적인 측면에서만 위협적인 존재였으나 지금은 질.양 모두 우리를 능가하는 수준이 됐다.
대만 화섬협회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유럽에 대한 섬유 수출물량은 한국과 대만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고 한다. 올들어 1~9월까지 중국의 수출실적은 전년동기 대비 의류 28.5%(수출금액 268억2천880만달러), 직물제품 29.4%(120억8천129만달러)라는 괄목할 성장을 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중국이 2년이내 자급률 70%를 달성할 경우 우리는 가장 큰 수출시장을 거의 상실하는 것과 함께 중국의 기술력이 급격히 향상되고 있어 미국이나 유럽 등 부가가치가 높은 수출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잃게 된다.
하영태 대구경북견직물조합 이사장은 "지금은 앞이 캄캄한 상태"라며 "경쟁력이 있으나 자금이 부족한 업체에 대한 정부의 파격적인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정암기자 jeong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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