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합데스크-지방권력과 중앙권력

욕구가 넘쳐나는 시절이다. 벌어들이는 수입은 줄어드는데 가족 모두가 자기 몫을 찾겠다고 아우성치는 집안 꼴이다. 국가의 경제력이 새나가고 국민의 문화의식은 제자리 걸음인데 욕구만 계속 커지고 있다. 변변찮은 정부에 대고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주문만 많아진다. 집안 살림이 거덜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생긴다. 가족을 위해 아무도 희생하려 들지 않는 사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의무를 생각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요즘 지방자치제를 둘러싼 논의가 분분하다.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갈등에서 시발된 논의다. 중앙권력은 지방권력에 재갈을 물리려 하고 지방권력은 그에 반발하고 있는 게 저변의 실상이다.

도마위에 오른 지방 자치제

지방자치제는 이런 권력다툼의 입장에서 파악되어서는 안된다. 제도의 효율성과 건전성 확보를 주안점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행정자치부가 최근 내놓은 지방자치제 개선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안은 광역시의 기초자치단체 폐지, 시군통합을 통한 자치단체 영역 재설정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특례시, 지정시를 두는 파격적인 발상도 담고 있다.

지방언론에서는 95년 지방자치제 출범에 전후하여 광역시의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자치제의 기반을 짜는 일에 소홀히 한 채 도입 자체에 몰두한 인상이 없지 않았다. 그 결과 5년 반의 시행착오가 빚어졌고 이제 와서 기초자치단체 폐지를 검토안으로 내놓게 된 것이다. 폐지가 기정사실화 될 경우 그동안의 예산낭비나 선거비용 등 사회적 손실은 되찾을 길이 없게 된다.

중앙과 지방의 갈등에서 시작

그때나 지금이나 광역시의 기초자치단체는 지역적 독자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구청의 개념은 행정 편의적인 것일 뿐 생활권.경제권.개발권의 측면에서 독자성을 찾을 수 없다. 도시계획, 도로.교통행정, 상하수행정, 환경행정, 각종 개발사업 등이 모두 광역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구청은 시청에서 나눠주는 예산으로 기본적인 도시관리 업무를 맡는게 고작이다. 구청 단독으로서 할 수 있는 사업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기껏 체육시설이나 복지시설 한건주의에 그쳐 중복투자를 일으키는 폐단을 낳고있다. 기초자치단체가 이런 마당이니 기초의회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기초단체 선거에 대한 주민의 철저한 외면도 이런 현실에 근거하는 것이다. 누가 구청장, 구의원이 되든 무방하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경북도의 자치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도와 시군의 행정 기능이 똑 같아 광역자치단체인 도의 존재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도가 있어야 할 독자적인 사업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초자치단체의 운영도 효율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지않다. 인구 10만 이하가 전체 23개 시군의 절반 가까운 10개, 5만 미만도 6개나 된다. 이렇다 보니 중앙권력에 대해 자치단체가 제 목소리를 낼 처지가 못된다. 대도시의 동보다 영세한 규모로 자치단체를 꾸리다 보니 자치제 역시 허약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이유 있는' 중앙권력의 개입 논리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자치기반의 효율적 손질 필요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되어서는 안되겠지만 그 운영방식은 항상 검토의 대상으로 남겨져야 한다. 지금의 자치제는 50년전 행정단위를 골격으로 하고 있다. 33개 시군시대의 선산, 영일, 월성, 안동, 영풍등 9개군이 시지역으로 통합되었지만 여러 영세한 군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세상이 엄청나게 바뀌었는데도 자치 기반을 손질하지 않아 적지않은 낭비요인을 드러내고 있다. 공무원 1인당 주민 수를 보면 그런 비효율성을 짐작할 수 있다. 포항, 구미, 경산, 경주가 200~270명에 이르는 데 비해 6개 군은 40~90명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 자치단체는 공무원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있는듯한 모양새가 된다. 또 대부분 시군이 적자재정인데도 불구하고 시군청.의회 유지비용으로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 있다.

이런 비효율성을 줄이고 자치제의 체질강화를 위해서는 지역 특성과 지리적 여건을 감안한 시군 2차통합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행정자치부 안은 인구 50만 이상의 특례시와 30만 이상의 지정시로 통합한다는 구상인 것 같다. 한 개의 중심되는 도시와 주변 군을 합쳐 인구규모를 적정화시킨다는 복안이다. 실리가 없지 않은 시책으로 여겨진다. 통합되는 시군의 관계는 조선시대의 주현(主縣)과 속현(屬縣) 정도로 정리하면 될 것이다. 즉 민선시장이 통합군의 행정책임자를 임명하는 방식이 된다.

2001년의 한국에게 던져진 화두는 욕구관리다. 정부나 국민이 욕구관리에 실패한다면 내년은 더 혼란스럽고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다. 그 첨단에 서서 솔선수범해야 할 계층이 중앙과 지방의 정치권력이다. 이기주의나 권력다툼으로서가 아닌 지방자치제의 개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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