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기대지 마세요

엘리베이터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단 하나의 문구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기대지 마세요"라는 글자들을. 그 글자들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 그 부드러운 문구에 실린 힘을, 나를 억압하는 무게를 느낀다. 안과 밖에 모두 새겨진 똑같은 글자들. 그것은 결코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그 글자들이 내 정신과 혼의 한가운데에 또렷하게 새겨진다. 왜? 왜 그럴까.

우리나라는 삼년 전에 IMF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 경제적 위기 속에서 기업은 구조조정을 감행했고, 그 일차적인 희생양은 맞벌이를 하는 기혼여성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족부양의 일차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여성들이었기에. 어떻게 이런 괴이한 발상이 남성 '기업주'의 두뇌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여성의 노동력은 필요하면 쓰고 필요없으면 버릴 정도로 값싼 것인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처자식을 벌어 먹여살려야하는 기혼남성들에게만 지급되는 '가족수당'. 기껏해야 이, 삼만원 정도 붙지만, 여기에는 자본주의 음험한 음모가 숨어있다. 가족은 자본주의 노동조직의 주춧돌이고, 가사노동은 자본주의 체제를 영속시키는 기능을 한다. 공적인 노동과 사적인 노동의 분리는 여성의 경제적 조건을 악화시키고, 결국 가사노동은 비생산적인 노동으로 전락한다. 노동의 성적인 분화가 자본주의에 선행됐든 아니든 여성의 실존적 조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여하튼 헤이디 하트만이 지적했듯, 가족수당은 '노동의 성적 분화의 초석'.'핵가족의 경제적 초석'.'여성의 남성에 대한 경제적 의존의 초석'이 된다. 이토록 사소한 차이가 "너는 경제적인 무능력자야, 당신이 벌어오면 몇 푼이나 벌어온다고…" 등 등의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않고 여성에게 퍼부어대는 빌미가 될 줄이야. 그러나 나는 '기대는 것'이 얼마나 편안한지 알고 있다. 당신이 쓰러지면 같이 쓰러지지. 이런 생각들에 저항하느라 오늘도 나의 등뼈는 고단하다. 기대지않고 서 있느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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