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전자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나

지난 1975년 미국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쓴 '사회생물학'이라는 제목의 책은 출간과 동시에 반향과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인간과 동물을 나란히 놓고 생물학 및 진화적 관점으로 해석해 낸 독창적 시각이 놀라우면서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어떻게 감히 동물과 같이 취급하느냐는 반감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 윌슨은 새로운 세계의 개척자로 평가받게 됐고, 책 제목 '사회생물학'은 그대로 하나의 새로운 학문분야로 독립되었다.

'사회생물학'이 출간되기 4년전인 71년, 그는 '곤충의 사회들'을 펴내 인간 행동을 살피기 앞서 동물의 사회성과 행동을 고찰했으며 3년후인 78년 3부작 중 마지막인 '인간 본성에 대하여'(이한음 옮김, 사이언스 북스 펴냄, 342쪽, 1만5천원)를 출간, 학문적 성과를 완결지었다.

22년만에 국내에 번역, 소개되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는 사랑, 증오, 기쁨, 분노, 희망, 절망과 좌절 등 인간의 온갖 감정, 도덕과 이성, 법 체계에 따른 사회적 행동, 성적 특성의 바탕에는 인간의 유전자가 자리잡고 있으며 유전자가 인간의 본성과 행동을 결정짓는 데 얼마나 관여하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영국의 소설가 버틀러가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개체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처럼 그는 인간 역시 유전자를 담고 있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랑, 윤리, 자기희생, 종교 등 인간만이 갖고 있을 법한 특성들조차 번식을 돕는 성향을 조절하는 유전자처럼 번식을 도와 복제된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후세에 남겨져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 많이 발현된다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그는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이 자손을 잇는 생물학적 본성을 목표로 하고 사는 동안 윤리적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선택을 함으로써 본성과 갈등하는 측면이 있음을 살피며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유전적으로 얼마나 결정되는가에 대해 논의한다. 또 인간 행동을 규정하는 유전자의 형질을 검토하고 유전자가 문화적 진화에 끼치는 영향,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와 역할이 생물학적.문화적으로 어떠한 특성과 연관성을 가지고 진화해 왔는지 분석한다. 예를 들어 왼손잡이는 유전자의 형질에 따라 원래 결정된 것이나 문화적 요인에 의해 고쳐질 수 있으며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출세하기 위한 노력 등이 모두 더 나은 유전자를 만들기 위한 몸짓이라는 것이다. 학문적 내용을 다루면서도 흥미로운 이 책은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인간을 살피며 '인간과 호랑이는 결국 이름도 가죽도 아닌 유전자를 남길 뿐'이라는 통찰력 있으면서도 허망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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