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마지막으로 할일

나는 때때로 혼자서 이런저런 공상하기를 즐겨한다. 지금보다 좀 더 젊었을 땐 훗날 남편과 함께 늙어가는 내 모습을 자주 그려보곤 했다. 언젠가 나이 지긋해질때 둘이 마주 보고 앉아 살아온 지난 날들을 얘기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여유롭게 보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다. 아마도 50세 이후이면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지금 그 나이가 되고 보니 다행히도 그 소망이 조금은 이루어진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옛날엔 나이많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요즘 생각해보니 일종의 합리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드는 것도 결코 나쁘지만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젊은 날의 뜨겁기만하던 열정보다 지금의 안온한 따스함이 훨씬 더 좋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지난 봄부터 가을까지 남편과 나는 팔공산에 매료되어 자주 그쪽으로 갔다. 때로는 팔공산 입구의 화원을 찾아 계절따라 피는 꽃구경도 하고 아파트 베란다를 장식할 화분을 사기도 하면서. 젊은 날엔 답답하게 여겨지고 지겹기도 하던 대구가 내 정든 고향이려니 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간다.

한 해가 또 저물어가고 있다. 달력을 한 장씩 넘기는동안 어느새 그토록 떠들썩한 기대감 속에 출발했던 2000년 이 해도 마지막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간다.

문득 새해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누군가에게 빚진 일과 해야할 일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이제부터는 내 자신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도 들고... 대학시절, 의학사를 강의하시던 교수님이 말씀하신 "예술,철학,종교, 이 셋중 하나는 있어야 한다"시던 말씀을 몇십년째 기억하고 있다. 그후 나는 신앙을 갖게 되었고, 요즘은 그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마지막때까지 가지고 가야할 화두임을 깨닫는다.

경동정보대 평생교육원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