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련의 샐러리맨 '서글픈 망년소회'

올해는 돌이키기 조차 싫은 한해였다. 새천년을 맞으면서 지긋지긋한 IMF 터널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들떠 있었는데, 모든 것을 바쳐왔던 직장을 한순간에 잃게 됐고 애써 가꾼 기업은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른채 무너져 버렸다.

올 한해를 보내는 기업인과 직장인, 실직 위기에 놓인 가장들의 눈을 통해 지난 한해 어려웠던 경제상황을 들어본다

편집자

◈제조업체 김과장

김(40)씨는 지역 중견 제조업체 과장이다. 1년전, 정확히 2000년 1월1일 새벽. 아내와 함께 팔공산 갓바위에 올랐다.

올해부터는 실직, 급여 삭감에 대한 불안없이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처음에는 이 기도 덕분이었는지 장밋빛 희망으로 가득찼다. 회사 매출도 전년보다 성장했고 삭감됐던 급여도 노사협상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돼 집에서도 가장의 위신을 회복했다.

그러나 하반기부터 상여금이 제 날짜에 나오지 않는 등 회사가 어렵다는 소문이 나더니만 지난달 월급이 미뤄졌다.

다시 거리로 내몰리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IMF 구제 금융을 받을 당시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일까.

그 때는 해약할 적금과 보험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준비돼 있는 것이 없다. 애들 교육비는 훨씬 더 들어간다.

이미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는 상태에서 달리 대출할 길도 없다. 보증인을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대출을 받더라도 상환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돈을 좀 벌어보겠다고 아내 몰래 주식에 손을 댔다가 원금 1천400만원에서 1천만원을 까먹어버렸다. 500만원으로 시작해 처음 조금 돈을 벌었던 것이 화근. 결국 대출까지 해 코스닥에 투자했는데 망해버렸다. 처음 이 종목을 권했던 사람의 '망할 업체는 아니니까 장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 보라'는 말만 위안으로 삼고 있다김과장은 내년 1월1일 새벽에도 갓바위에 오를 생각이다. 제발 우리 회사는 살아남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주식시장이 회복돼 원금만이라도 건지게 해달라고 애원할 계획이다.

최정암 기자 jeongam@imaeil.com

◈영남종금 김과장

"답답할 따름입니다. 삶 자체가 영업정지된 것 같아요"

옛 영남종금에 근무했던 김모(37) 과장. 회사가 두 차례나 영업정지되더니 결국 서울의 3개 종금사와 통합하면서 청산될 지경에 놓이자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한창때 120명 직원을 자랑했고 대구·경일종금이 퇴출된 IMF 직후의 위기도 이겨냈던 영남종금이지만 계속된 경영난으로 끝내 무릎을 꿇는 것을 지켜본 김 과장에게 '진짜 IMF'는 올해였다. 그리고 김 과장도 실직의 쓴 잔을 마셔야 할지 모르게 됐다. 통합 하나로종금으로 살아남은 직원은 불과 30명에 불과했다.

영남종금은 김 과장이 청춘을 바친 직장이었다. 10년동안 근무하면서 줄곧 영업일선을 뛰었다. 특히 올해엔 더욱 그랬다.

지난 여름 영업정지 3개월이 풀린 뒤 경북도내로 발령이 나자 아예 집을 팔고 떠났다. 어려운 영업환경에도 불구하고 기업을 찾아다니며 수신에 힘써 2개월만에 건수 기준 20% 신장이란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통합작업을 위해 다시 영업정지조치가 내려진 11월 김 과장은 예금을 유치한 고객들을 볼 낯이 없어 어디든지 숨고만 싶었다.

"2000년은 특히 금융기관 직원들에게 가혹한 시련의 해였어요. 영업정지, 피흡수합병, 퇴출이란 단어가 난무했잖아요"

김 과장은 영남종금이란 상호 자체가 사라져서 아예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참 허무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다니던 회사가 퇴출됐다고 해서 내 인생마저 퇴출되는 건가요?" 반문하는 김 과장에게 내년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이상훈기자 azzza@imaeil.com

◈우방 김대리

우방에서 일하는 이모(35)대리. 그에게 2000년은 좌절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회사 존망의 갈림길에서 이대리는 하루도 마음 편하게 발뻗고 잠을 자본 기억이 없다. 악몽을 꾼 날도 부지기수.

회사가 살아야 자신도 산다는 생각에 이를 물고 일을 했다. 영업팀소속은 아니지만 그는 분양전담 직원 못지 않게 아파트 분양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친인척은 물론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에겐 청약을 권했다.

그러나 눈물겨운 노력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난 6월 채권금융기관이 대출금을 회수하는 바람에 결제자금이 부족해 1차 부도를 2차례나 내더니 계약자들의 분양금 납부 거부와 중도해약 요구 사태가 일어났다.

자금사정은 더욱 악화돼 추가 자금을 요청했지만 수 차례 진통 끝에 결국 자금지원이 무산되고 회사는 지난 8월 부도를 낸 뒤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됐다.

지난 3년여 동안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데다 3개월치 월급까지 밀려 가계는 파탄직전에 놓였다.

올 7월 마련한 16평짜리 아파트는 더 화근이 됐다. 집을 살 때 빌린 대출금 이자를 갚기 위해 빚을 내 이자를 갚아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아예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않을 수는 없다. 회사의 법정관리 개시결정이 내려졌고 조만간 공사를 재개할 수 있게 됐다. 이대리는 다짐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회사는 반드시 회생한다"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의 한파로 고통받는 모든 근로자들이 올해보다 나은 새해를 맞게될 것을 꿈꾸며….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삼성차 협력사 김사장

삼성상용차 협력업체 생존비상대책위원회(삼생회) 회원인 박모 사장의 속은 삼성상용차 퇴출이 발표된 지난 11월3일 이후 이미 다 타 새까만 숯이 돼버렸다.

현대차에 부품을 공급하며 승승장구하던 박사장에게 삼성상용차 관계자들이 찾아온 것은 지난 96년. 그들은 1조5천억원을 투자, 삼성상용차를 세계적인 업체로 만들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놨다. '삼성'이라는 이름이 확신으로 다가왔다.

십수년 앞을 내다보며 설비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7월에는 삼성측 권유로 경영위기에 처한 협력업체를 인수하기까지 했다. 설비투자비만 100여억원.

퇴출 얘기가 나올 때도 삼성측은 납품을 독려했기 때문에 '설마'했지만 퇴출을 기점으로 삼성측 태도는 돌변했다. 시설투자 보상은 고사하고 진성어음 결제마저 외면, 대기업로서 최소한의 상도덕도 내팽겨친 것이다.

빌려쓴 돈의 이자와 결제하지 못한 어음의 연체료를 꼬박꼬박 내야한다. 1억여원에 달하는 전기료·수도료 고지서도 어김없이 날아든다.

정부나 대구시의 특별지원? 박사장은 코웃음부터 친다. 삼성상용차 납품비율 100%는 신규 대출 확률 0%를 의미함을 박사장은 잘 알기 때문이다.

박사장의 유일한 바람은 이번 사태가 되도록 빨리 해결되는 것. 같은 돈이라도 언제 지원되느냐에 따라 업체의 생사가 갈리기 때문이다.

"사업요? 지긋지긋합니다. 다 정리하고 이민 가서 맘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 열두번도 더해요"

김가영기자 k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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