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해야 솟아라' 시인 박두진(朴斗鎭)은 시 '해'에서 어둠을 살라먹고 말갛게 얼굴 씻어 곱지만 '이글이글 앳된' 해가 솟아나기를 열망했었다. 세상이 어두워 그런 염원을 뜨거운 가슴으로 노래했을 것이다. 지난 한해는 너무나 어둡고 무거웠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해가 떠오르기를 간절히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새해 새 아침의 해가 둥글게 솟아올랐다. 사실 오늘의 해라고 어제의 해와 다를 바는 없다. 만물이 그 빛을 받아 환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이글이글 앳된' 해를 갈망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고도 믿고 싶어지는 것일까. 송구영신(送舊迎新), 우리도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낡고 병들고 천박한 가치들과 거짓이 거짓으로 악순환하는 '허언(虛言)과 사위(詐僞)'를 내던져야만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되돌아보면 새 천년, 새로운 세기의 첫 해는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기대와 설렘은 잠시였을 뿐 실망과 한숨과 분노의 세월이었다. 정치는 뒷걸음질하고, 경제는 암담한 수렁에 빠져들었으며, 기업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금융은 막대한 공적자금에도 '밑 빠진 독'이었다. 의사와 약사들, 심지어는 농민들까지 거리로 나와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실업자와 노숙자들은 거리를 헤매는가 하면, 교육이 뿌리째 흔들리고, 문화는 목이 죄어 작아지기만 했다.
특히 기득권층은 진정한 변화와 개혁은커녕 '말 따로 행동 따로'를 거듭했다. 거짓말들이 날개를 단 채 비판과 도전의 돌멩이마저 두려워 하지 않았다. 윗물부터 썩을 대로 썩어 사회 곳곳에서 악취가 진동하기도 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힘 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서민들만 희생을 강요당하는 꼴이었다. 집단이나 개인 이기주의도 하늘 높은 줄을 몰랐다. 이 모든 것은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인간성이 황폐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우리는 이제 진정 바뀌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를 일으켜 세워야만 한다. 경제를 살리고 정치를 정상화해야 하며, 고통을 분담하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도 가장 심각한 지경에 이른 '도덕적 해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뱀의 속성 중에서도 불신.간계.교활.유혹을 뿌리치고, 지혜.불사.재생.풍요의 미덕들만 우리의 가슴에 용솟음치는 한해가 되기를 뱀띠해의 새 아침에 염원해 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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