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경의선 연결 사업은 한반도의 물류환경 개선에 기여함은 물론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지향해야 할 반도국가의 국민이면서도 분단 이후 대륙의 존재를 잊고 살아온 우리들에게 웅혼한 대륙적 기상을 새삼 일깨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매일신문과 부산일보, 광주일보, 강원일보, 대전일보, 제주일보 등 6개 신문사(일명 춘추사)는 공동으로 경의선 복원 이후 대면하게 될 유라시아 대륙을 사전 답사하는 '유라시아 대륙을 달린다-鐵의 실크로드 답사기' 시리즈를 마련했다.
특별취재팀은 1, 2진 2개팀으로 나눠 제1진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만주횡단철도(TMR)를 타고 중국에서 러시아까지, 제2진은 과거 실크로드였던 대륙횡단철도(TCR)를 타고 중국에서 터키까지 대장정에 나선다.
특별취재팀진은 27박28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만주횡단철도를 타고 1만㎞를 넘는 구간의 철로위에서, 주요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철도 관련 물적유통의 현장과 지역의 실정을 취재했다.
당초 취재팀의 첫번째 취재목적지는 중국의 훈춘이었다. 훈춘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3국 국경이 맞닿은 곳이고, 현재 3국의 철도를 통한 물적 유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므로 훈춘을 첫 취재목적지로 정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그러나 광대한 대륙, 특히 사회주의 폐쇄적 잔재를 완전히 떨어내지 않은 국가들을 취재하는 일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취재 일정은 처음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중국 창춘(長春)을 거쳐 재중동포(조선족)들이 가장 많이 산다는 옌지(延吉)에 도착했을때는 오후 4시쯤이었는데도 이미 하늘에 별이 떠있었고 주위는 어두웠다.공항에서 취재팀을 기다리고 있던 40대 남자 안내인은 대뜸 "어둡고 눈이 많이 와서 훈춘에는 가기 힘들 것"이라면서 일단 옌지에서 하루 밤을 지내는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취재팀은 훈춘에서 밤을 보낼 것이라던 애초의 희망을 접고 우울한 심정으로 옌지의 백산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취재팀이 훈춘행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번 더 채근을 하자 안내인은 휴대폰으로 이리저리 훈춘 쪽을 불러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취재 대상지는 차선책으로 마련해둔 투먼(圖們)으로 수정됐다. 투먼은 북한의 남양시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또 다른 국경지역으로 북한과 중국이 철도를 이용해 소규모 무역을 하는 곳이다.
다음날 60, 70년대 한국의 시골풍경을 닮은 옌지의 들판을 차로 달려서 투먼해관에 도착했을때는 공기가 한결 차가워져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대뜸 입김이 연기처럼 흘러나왔다. 계절과 날씨 탓인지 사람들은 드물었다.
차에서 내리자 맨 먼저 취재팀의 눈에 '중조국경'이라고 새겨진 자그마한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을 통해서 북녘땅 앞에 선 것이다.
중국 쪽 다리 앞에 서니 녹다 만 얼음덩이를 안고 가파르게 동해를 향해 치달리는 두만강의 물살이 보였다. 중국 쪽에서 투먼강이라 부르기도 하는 저 강은 백두산 동남쪽 대연지봉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석을수(石乙水)를 원류로 삼고, 마천령 산맥에서 발원하는 소홍단수(小紅湍水)와 함경산맥에서 일어나는 서두수(西頭水)를 끌어안으면서 동해로 동해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무슨 국경이 이럴수도 있는가! 일찍이 남북한 사이에 놓인 철책 앞에서 살풍경을 경험했던 취재팀은 한없이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두만강 변 국경앞에서 차라리 맥이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중국쪽에서 마련한 유료 전망대 위에서 군용 망원경을 180도로 천천히 돌려보자 북한쪽 풍경이 천천히 정지된 하면으로 하나하나씩 펼쳐졌다.
현재형으로 서술하자면, 눈밭 위로 강아지 두 마리가 뛰어다니며 서로 희롱하고 있고, 열살 남짓해 보이는 남자 아이 하나가 눈밭에서 홀로 썰매를 지치고 있다. 그 뒤로 북한 남양시의 잿빛 콘크리트 건물들이 보인다.
한 건물 옥상에는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다시 망원경을 아홉시 열시 열한시 방향으로 틀어보았다.
자전거를 타고 뒤뚱거리며 산등성이를 돌아나가는 한 중년 사내와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누며 반대쪽으로 걸어나오는 북한 군인 두 명이 보인다.
북한 땅을 좀 더 앞쪽에서 보기 위해 다리 입구로 다가가자, 매표소 같은 인상을 주는 중국 국경 초소 안에서 젊은 공안원 한 명이 모자를 챙기며 하품을 할 듯한 표정으로 걸어 나오더니 동행을 했다. 국경을 지키는 경계병의 긴장감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리 중간 쯤에 이르렀을 때 다리 위에 그어진 줄 하나 탓에 더 이상 저 쪽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중국과 북한, 두 나라의 국경 앞은 너무나 평화로워서 강원도 철원 강화나, 경기도 연천 어디쯤의 철책 앞 풍경이 더욱 모지락스럽게 재인식됐다.
다시 전망대에 올라 시린 손을 부비며 망원경을 두, 세시 방향으로 돌려보니 좀 전에 놓쳤던 정물 하나가 퍼뜩 눈에 들어왔다. 북한과 중국 사이에 놓인 두만강 철교였다.
다리와 철교는 대략 1㎞정도 떨어져 있었다. 취재팀은 두만강을 끼고 눈덮인 둑길을 걸어서 철교로 향했다.
철교 앞도 고즈넉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공안원 한 명이 어깨에 총을 매고 어슬렁거리듯 서 있고 간이역에는 한 명의 직원만이 상주해 있을 뿐이었다.
안내원은 "북한쪽에서는 해산물이 들어오고 중국쪽에서는 쌀과 옥수수가 들어가는데 요즘에는 이 철교를 통한 교역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취재팀은 좀 더 자세한 교역내용과 통행횟수를 알아보기 위해 역무원을 찾았으나 역무원은 문을 걸어잠근 채 차를 끓이는데만 골몰했다. 그는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지 않았다.
취재팀은 오랫동안 중국쪽 철로 위를 서성거리기도 하고 걸어보기도 하면서 북한쪽에서 들어오거나 중국쪽에서 들어가는 화물열차를 기다렸으니 열차는 오지 않았다. 일정에 쫓긴 취재팀은 아쉬움을 달래며 투먼을 벗어나 옌지로 이동했다.
용정쪽으로 뻗은 강변도로변을 달리는 동안 차창을 통해서 바라본 북녘의 산들은 커다란 거적을 덮어놓은 듯 나무 한 그루 없이 철저히 개간돼 있어 일견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취재팀은 저 황량한 민둥산의 현장을 취재해 보고 싶었다.
취재팀은 북한쪽 국경에서 중국 화물열차를 기다리는 우리들의 모습과 두만강 저 편 기이한 산의 정체를 언젠가 직접 눈앞에서 확인해 보리라 다짐을 하며 오후 7시40분 옌지발 하얼빈행 보쾌(普快·일반쾌속열차)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밤을 도와 달려 다음날 오전 6시30분이 되면 하얼빈역에 당도해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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