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언어로 전달한다는 것은 클랙션 하나로 운전자의 짜증을 표현하거나, 두꺼운 코트 위로 등을 긁는 것과 마찬가지로 힘겹고 답답한 노릇이다. 언어의 꽃인 시는 바로 그 힘겹고 답답한 느낌이 트이면서 은폐된 삶이 내장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달리 비유하자면 그것은 우연히 팔을 들어올리는 순간, 윗도리와 아랫도리 사이로 트이는 흰살결 같은 것이다. 해마다 신춘의 좋은 시들은 숨겨진 삶의 맨살을 응시하게 한다.
'동해와 만나는 여섯 번째 길'(김희영)과 '땅은 제 속에 눈물을 가두고 살아간다'(임경림)는 비록 참신한 조망이나 색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나, 전반적으로 안정감 있는 구성력을 갖춘 시들이다. 그러나 대개의 신춘문예 응모작들이 그러하듯이, 기성의 시풍과 범용한 수사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는 약점을 갖는다.
기형도의 말투를 연상케 하는 기이하고 황당한 어법으로 삶의 황폐와 좌절을 넋나간 듯이 중얼거리는 한용국의 시들, 특히 '실종'과 '내성' 등은 젊은 시의 새로운 물줄기를 가늠하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들이다. 다만 군데군데 납득할 수 없는 애매한 구절들이 글쓴이의 언어 통제력을 의심케하고 장인으로서의 신뢰를 가로막는다.
당선작으로 결정된 조유인의 '금관'은 고대 석관의 밀폐된 뚜껑을 여는 듯한 돌출한 상상력을 빛과 소리의 영롱한 합금을 빚고 있다. 물론 간혹 추상화된 말들이 관념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가느다란 국수다발처럼 힘을 잃는 듯한 느낌이나, 마지막 네번째 연이 시적 의미의 종결에 별다른 기여를 못하고 사족처럼 내걸린 듯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이는 빛으로부터 들리는 소리를 읽어내고, 깨어짐으로부터 만들어짐의 비밀을 탐색하는 특이한 눈길은 유망한 시인으로서의 전도를 예감케 한다. 아울러 나직하고 느릿하면서도 끈기와 뚝심을 갖춘 꼬깃꼬깃한 말솜씨는 사소한 곤경에 쉽게 꺾이질 않을 근성 같은 것을 짐작케 한다.
당대의 신뢰할 만한 쟁이로 살아남아 매일신춘문예의 이름을 빛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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