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탑 위의 십자가에 구름이 무겁게 걸려 있었다. 바람은 그런 대로 잦아들었으나 냉기가 뺨에서 코끝으로 스며와 다시 목덜미를 지나 가슴팍까지 파고들었다. 떨려 오는 어깨를 웅크리며 오리 털 파카를 옥죄어보았지만 가슴 한복판은 얼음으로 문지르는 것처럼 여전히 시리기만 했다. 건너편으로 몇 발자국만 더 가면 병원인데 신호가 바뀌어도 얼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교회 지붕의 처마 끝에서 더 이상 오르기를 멈춘 담쟁이덩굴을 쳐다보았다. 잎사귀는 이미 볼품 없게 말라 시들어 있었지만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는 줄기가 용해 보였다. 안간힘을 쓰며 손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자 슬며시 아랫배에 손이 갔다. 이 악물고 나의 몸 한가운데에 매달려 둥지를 튼 핏덩이. 생각만 해도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으나 다시 파란 신호에 불이 들어오자 횡단보도를 건널 수밖에 없었다. 침착하게 걸으려 애썼으나 담쟁이 줄기가 뒤통수에 촘촘한 침을 꽂고 빨아들이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걸음이 재촉되었다.
악다구니라는 것이 왜 내게는 없었을까. 엄마처럼, 나에게도 기다릴 독한 항체가 있다면 사는 일에 욕심을 부리고 떼도 썼을 것이다. 겨우 이삼천 원으로 시장을 봐야 할 때도 귤 한 봉지나 고등어 한 마리 이런 것 돈 없으면 안 먹고 말았지, 장사꾼이 저런 질긴 년, 하는 눈초리로 쳐다보게끔 값을 가지고 흥정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나는 앙칼지게 살지 못했다. 임신 5주 째라는 걸 알았던 날 손톱 만한 생명체가 간당간당 숨을 쉬는 것이 초음파에 찍혔을 때에도 나에게는 어미로서 갖는 든든한 배짱이 도무지 생겨나지 않았다. 나는 삶의 모든 병원균들로부터 무방비상태에 놓여 있었으므로 뱃속의 아기에게 제대로 된 피와 살을 공급해줄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주먹만한 자궁 속에 아직 채 만들어지지도 않은 내 새끼를 보호해줄 힘이 없었던 것이다.
가엾은 것. 너에게까지 병원균들을 옮길 수는 없지.
"어쩌죠? 갑자기 응급환자가 들어오는 바람에요. 죄송하지만 좀 기다려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오전에 접수를 받았던 간호사가 먼저 알은척했다. 그녀는 결코 조금이 아닌 듯한 표정을 짓고서 아무 것도 먹지 않았냐는 말만 재차 물어보더니 응급실로 급히 걸어가 버렸다. 그녀가 일으키고 간 바람에서 소독약 냄새가 났다.
기다려야 된다는 말을 듣고 나자 다리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생각 같아서는 병원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일단 복도의 의자에 몸을 맡겨야 할 만큼 현기증과 함께 피로가 몰려왔다. 오전에 병원을 다녀오느라고 자리를 비웠더니 사장에게 눈치가 보여 인형 옷을 갑절로 만들어 놓고 온 터였다. 연말이라 선물용으로 나갈 인형들의 주문량이 끊이질 않았다. 평소보다 손을 잽싸게 놀렸지만 생각은 온통 아기에게 쏠려서 박음질이 매끄럽지 못했다. 불량이나 안 나오면 다행이지 싶었다. 내 뱃속은 하루 종일 비워둔 채 인형 뱃속에는 솜뭉치를 얼마나 통통하게 집어넣었는지 모른다. 수술 도중 기도가 막힐 위험이 있으니 물도 마시면 안 된다는 의사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른침만 간신히 삼켜본다. 급하게 담당 의사를 찾는 방송이 먼지처럼 떠다니다 숨을 틀어막을 듯 목구멍을 조여 왔다.
"보호자는 같이 안 오셨나요. 두분 다 설명을 들으셔야 되는데……"
오전에 담당의사는 수술을 위해 필요한 약관을 내밀면서 뾰족한 턱을 살짝 치켜올리고 물었다. 마땅히 답변할 말을 찾지 못해 꾸물거리자 그녀는 은색 안경테를 일정하게 만지작거리기를 반복했다. 그 눈빛이 잘 닦여진 안경알처럼이나 완벽해서 사람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나는 그 흐트러짐 없는 태도 앞에서 배우자가 없다는 말을 간신히 중얼거리듯 내뱉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 싶더니 이내 사무적인 목소리로 수술에 관한 설명을 간단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라고 짧게 뱉은 말 빼고는 다른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말을 할 때의 표정은 마치 한 때의 불장난을 나는 다 이해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낙태쯤은 간단한 수술이니까,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수도 있다니. 그와 같이 묵은 쌀로 밥을 해먹고, 곰팡이 핀 천장에 빨랫줄을 걸어 양말을 말리고, 볕도 잘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때 절은 형광등을 보며 광합성을 대신 보충 받아 살을 비벼온 생활들은 내게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은 그 생활들이 모두 산산조각 나도 괜찮다는 것인가. 척 달라붙은 뱃가죽을 쓸어 내리며 혀끝을 잘근잘근 씹는 것으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널 어떻게 함부로 해도 돼서 그러는 게 아니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는 너무 없기 때문이란 걸 네가 알아야 해.
엄마도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없어서 내 상처를 외면해야만 했던 것일까. 어쩔 수 없어 그랬노라고 좀더 일찍 말해주었더라면, 흉터로 세상을 등에 지며 사는 일이 조금은 가벼웠을 텐데.
창 밖으로 보이는 구름은 금방이라도 눈이 되어 쏟아질 것 같다. 준혁이 물 빠진 가을 잠바를 걸치고 집을 나간 지는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전에 시선이 복도 구석의 공중전화기에 가 닿았다.
그 동안 어떻게 지낸다는 전화 한 통이 없었다. 하다 못해 같이 일 다니는 김씨한테라도 넌지시 전해주는 기별이 없었다. 마침 쌀도 바닥이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장네로 갔다. 반장인 영훈 엄마는 살림 수완이 좋아 김씨가 공사장에서 벌어다 주는 돈으로 조그만 쌀집을 차렸고 동네 부녀자들 곗돈 운영까지 도맡아서 척척 해냈다.
"거, 젊은 친구가 사람은 참 좋은데 통 말이 없어놔서는. 같이 술 한잔을 해도 속사정 뻔히 아는 처진데 마음엣소리하는 걸 본 적이 없시다. 일터에 안 나온 지도 꽤 됐소. 홧김에, 배를 탄다 어쩐다 한 것 같기도 하고……."
김씨한테 들을 수 있는 말은 겨우 그뿐이었다. 가게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눈치만 살펴가며 쌀을 퍼 담던 영훈네가 얼른 뒤따라 왔다. 그녀는 나를 불러 세워놓고 이리저리 안색부터 살폈다. 근심 반 의심 반이 섞인 눈빛이었다.
"이봐, 자네 요새 어디 아픈가아? 옴포동이 같은 얼굴이 쪽 빠져 가지고설랑 영 말이 아닐세. 혹시, 애라도 들어선 거 아녀?"
"야근 좀 해서 그런걸 가지고 애는 무슨"
"아 여태껏 야근 한 두 번 했나? 딱 보니 그런 얼굴이 아닌데 뭘. 내 눈은 못 속이는 거 알면서 그러네. 말 좀 해 봐, 이 답답한 사람아. 내가 쓸데없이 참견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다 자기 생각해서 그러는 겨"
영훈네는 사실을 캐묻는 형사처럼 찰싹 달라붙어 좀체 보내주려 하지 않았다. 가스에 보리차 물을 올려놓은 채 나왔다며 나는 간신히 그녀를 뿌리쳤다.
신호음이 떨어지지도 않고 그의 핸드폰은 무작정 음성 기능으로 넘어갔다.
눈이 올 것 같아. 옷 두둑하게 입고 다녀.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밥은 제 때 먹기나 하는 거야…….
소리가 되지 못한 말들이 침과 함께 아프게 넘어갔다.
"제발 너도 악다구니 한 번만 써봐. 나쁜 놈이라고 욕하면서 멱살을 잡든지, 아니면 내 따귀라도 실컷 갈겨보란 말야, 썅!"
공장 거래처의 빚쟁이들이 한바탕 난리를 치고 돌아간 날 저녁 오히려 내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른 건 준혁이었다. 나는 온종일 건축현장에서 고되게 일하고 돌아왔을 그에게 빚쟁이들한테 구겨진 월세 방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준혁은 눈앞에 펼쳐진 집안 꼴을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깨진 접시 파편들을 빗자루로 쓸어 담고 있는 나를 보고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준혁은 빚쟁이들이 손대지 않은 인형들조차 내동댕이쳤다. 그것들은 일제히 심장을 뚫고 들어와 쿵 쿵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다. 밤새워 깔끔하게 박음질한 옷자락이 찢어지고 머리카락이 흐트러져도 망가진 인형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심지어는 몸 속의 솜이 터져 나와도 웃고 있었다. 죽어있는 내가, 알맹이 없이 껍질로만 이루어진 삶이 보였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준혁의 광포함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땅바닥에 널브러진, 좀 전까지 그의 손에 다정하게 들려있던 라면봉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나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희망은 준혁 뿐이라는 걸 그는 몰랐을까.
준혁은 다 기울어 가는 원단 공장을 되살려보고자 끝까지 발을 동동 굴렀다. 규모는 작았지만, 군대를 제대하고부터 근 십 년 동안을 몸담아 왔던 생활터전이었다. 그 동안 IMF며, 최신식 기계들로 무장한 이웃 공장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버텨오던 회사가 뜻하지 않게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나고 말았다. 내가 다니던 공장을 비롯하여 믿었던 거래처들이 하나 둘씩 끊길 때마다 준혁의 사장도 포기한 채 손을 놓는 듯 했다. 어차피 회사를 살려봐야 특별한 승산도 없으니 본인만 적당히 피해보고 끝내자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준혁과 나머지 공장 식구들은 생계가 달린 문제이니 만큼 그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원단의 수요가 필요할만한 공장마다 돌아다니며 샘플 공급만이라도 어떻게든 허락을 받아내는 식으로 겨우 회사를 이끌어갔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그런 노력에 고무되는가 싶었는데 사장은 준혁에게 실질적인 업무를 맡기고서는 결국 상의 한마디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를 믿고 선불을 지급했던 거래처의 사장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빚 독촉을 해대는 바람에 준혁은 아예 내 방으로 거처를 옮겨버렸다. 그래도 몇몇 빚쟁이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와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소란을 피우고 갔다.
준혁이 군용처럼 생긴 국방색 배낭을 메고 나를 찾아오던 날 식도를 넘어가던 라면 가락이 친친 감기는 것 같아 잘 삼켜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창문을 톡톡 두드리며 죄지은 사람처럼 서있는 그의 몰골을 보고 어디 밤도망이라도 가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차비 몇 만원 꿔달라면 얼마든지 그럴 심사였다. 그런데 막상 그를 보자 밀린 외상값을 정리하기나 하는 듯 돈 몇 푼 쥐어주며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간 얼굴 알고 지내온 시간의 더께들이 사람 마음을 그렇게 끈끈하게 할 수가 없었다. 어디 가든 몸조심하고 잘 살라고 한 마디 할라치면 밥은 먹었냐는 말이 나도 모르게 먼저 불쑥 튀어나오고, 차비는 있냐고 물어보려고 하면 어디 마땅히 돌아갈 집도 없지 않아? 하고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들이 나와버렸다. 우리가 함께 해온 시간들은 그런 것이었다. 인형 옷감이 떨어질 때가 되면 전화로 주문하지 않아도 그가 먼저 알아서 가져다 주었고, 밀린 일감에 치여 머리카락에 붙은 헝겊 실오라기조차 제대로 털어 내지 못하고 퇴근하는 날이면 술이 먹고 싶다고 말하지 않아도 조용히 포장마차로 데리고 가던 준혁이었다. 그의 어깨에 내려앉은 봄바람 냄새가 마냥 허기져 보여서 차마 그대로 보낼 수가 없었다. 나는 배낭을 옷장 옆 구석으로 쑥 밀치면서 무심한 눈길을 보냈으나 속으로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세간이 크게 늘어날 것은 없었다. 내게는 이미 웬만큼 필요한 살림살이가 갖춰진 상태였고, 애당초 공장에 숙직실처럼 달린 조그만 방에서 기거하던 그였으므로 챙겨올 만큼 쓸만한 것이 몇 안되었다. 오줌때 묻은 것처럼 눅눅한 이부자리는 그대로 놔두고 그나마 좀 쓸만한 텔레비전은 전파사에 가지고 가서 팔았다. 얼마 안 되는 돈이었지만 둘이서 삼겹살을 사 먹을 정도는 되었다. 이글거리는 화로 앞에서 눈을 딱 감고 비곗살을 질검 질검 씹었다. 이상하게도 비계를 씹을 때 가슴이 쓰라리지 않았다. 꼬르륵 넘어가는 찬 소주도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그 날, 알코올 방울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던 순간 가슴 꽉 막히는 통증으로 다가오던 준혁은 나의 항체가 되었다.
"통화 다 끝나셨어요?"
순서를 재촉하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산했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내 뒤로 두 명이나 줄이 서있다. 이미 끊긴 지 한참이나 된 신호음이 환청처럼 고막 주위를 맴돌았다. 바로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는 얼굴보다도, 튼실하게 불러있는 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얼떨결에 수화기를 건네주고 뒤돌아 서는데도 그 여자의 둥그렇게 솟아오른 배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무겁다. 그 여자의 배도 무거워 보이고 내 배 역시 무겁다. 무겁다기보다 딱딱하다. 어미의 곤두선 신경에 놀랐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다가올 가혹한 운명을 스스로 아는 건지 뱃속의 생명은 도무지 살아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직 태동이 있을 시기는 아니지만 생명이 붙어있다는 걸 알고 난 후부터 느껴지던 그 이상한 기분은 사라지고 없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감각에 나는 익숙하다. 등에 화상을 입었을 때도 그랬다. 뜨겁다거나 아프다거나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불은 아예 고통을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렸다. 화기는 숨을 꽉 틀어막고서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게 할 정도로 무서웠다. 지옥의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은 그 때 이미 내 등에 무감각한 삶의 낙인을 찍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열 일곱 살의 겨울은 불 속에 그대로 녹아버렸다. 눈은 내리는데 구들장이 자주 막혀서 아궁이 불이 신통치 않았다. 학력고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오빠는 늘 방에 틀어박혀 이미 몇 번이나 보아서 너덜너덜해진 책에 또 밑줄을 긋고 있었다. 오빠는 장차 집안을 이끌어가야 할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른들의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엄마를 도와 오빠가 공부하는데 불편이 없게끔 챙겨주어야 했다. 특히 불 지피는 일이 내 주된 임무였는데 아무리 불을 때도 아랫목이 미지근하기 일쑤여서 거의 아궁이 앞에서 살다시피 했다. 시험을 목전에 두고 감기라도 걸리면 큰 일이었던 것이다. 그날 따라 불은 왜 그렇게 안 붙던지 아무리 얼굴을 아궁이에 바싹 붙이고 입으로 후후 불어도 나뭇가지에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아끼느라 잘 쓰지 않던 지푸라기를 조금씩 섞어 불을 붙여도 매운 연기를 풍기며 이내 꺼져버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읍에 장을 보러 간 엄마도 좀처럼 돌아오지 않아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불을 피운다는 것이 그만 앉은 채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어느 사이 불씨가 되살아났는지 흩어져있던 땔감 부스러기에 불이 붙어 등뒤에 쌓아 놓았던 땔감더미로 옮겨 붙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등에 불이 붙어 있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면서부터 준혁은 밤마다 한숨처럼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무서운 화기가 또다시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내게서 준혁마저 야금야금 삼켜갈 것처럼 불기둥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보기 흉한 등허리를 말없이 안아주던 그의 손길도 점점 차가워져 갔다. 잔업거리로 가져온 인형들을 모두 망가뜨려 놓고 그가 집을 나간 저녁, 나는 무섭게 입을 벌리고서 마지막 내게 남은 항체까지 삼켜버린 불구덩이를 언뜻 본 것만 같았다.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준혁은 며칠동안 연락도 없이 피를 마르게 했다. 무슨 사고가 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제일 앞섰다. 그가 집을 나간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일을 마치고 집에 와보니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고 밥통에 밥이 안쳐져 있어서 조금이나마 안심을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평상시에 가지고 다니지 않던 그의 예금통장과 국방색 배낭이 보이지 않았다. 배낭이 쑥 빠져나간 빈자리를 보니 한바탕 불이 휩쓸고 지나간 잿더미처럼 허전했다.
몸살 기운이 있어 출근을 할 수 없었다. 토요일이기도 하고 전날 늦게까지 일을 하고 온 터라 하루 못 나가겠다는 말을 눈치 안보고도 할 수 있었다. 몸도 몸이었지만 아무래도 엄마가 혼자 살고 있는 D시에 한 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았다.
"우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선영이 니가 찾아가 뵈어야지, 안 그러니?"
인천 큰언니가 엄마에게 한 번 가보라고 기별을 준 지가 꽤 지났음에도 그 동안 준혁의 일 때문에 신경조차 쓰지 못하고 있었다. B형 간염이라고 했다. 인천 언니의 말로는 노인들의 경우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내가 듣기로 요새 B형 간염은 간단한 질병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혼자 살고 있는 노인네인지라 은근히 신경 쓰이기도 하고 언니들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여서 그리 편한 마음으로 내려가 있기 어려울 것이었다. 엄마가 낳은 자식은 오빠와 나뿐이다. 어쩌다 아버지 기일이나 명절 같은 때는 다 모이기도 하지만 서로간에 오가는 서먹서먹한 눈빛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아버지의 전 부인은 원래 몸이 약했는데 딸만 둘을 낳고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에는 아들이 별난 보물이라고 아버지는 엄마와 재혼했다. 엄마가 어른들의 소원대로 아들을 낳자 오빠는 식구들의 가장 큰 희망이 되었다. 내가 어쩌다 세상에 던져졌을 때 나는 오빠처럼 어른들의 유난스런 귀여움을 받기는커녕 그냥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었다. 언니들은 나름대로 엄마 잃은 서러움이 있어서 나에게 따뜻하지 못했고 오빠는 어른들의 기대에 못 미칠까 항상 부담감 속에서 숨을 죽였다. 나는 어느 곳에도 쉽게 섞일 수 없는 눈치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등에 화상을 입었어도 시외의 큰 병원에 가서 맘놓고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상처가 완치된다는 보장도 분명치 않았거니와 수술까지 하기엔 시골에서 오빠 하나 가르치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식구들 그 누구도 화상의 흔적이 쉽게 없어지리라 믿지 않았다. 나는 모두 잠든 한밤중에 큰 거울 앞에서 손거울 두 세 개를 갖다 비추며 사그라든 잿더미 속에 빠지는 절망에 휩싸이곤 했다. 솜털마저 깡그리 녹여 자취를 없애버린 돼지 비계 같은 흉터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두부와 비계 살점을 섞어 놓은 듯한, 지도의 땅덩어리 일부가 내 등판에는 구역질나게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겨우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밥숟갈을 들까 말까하는데 주인집 여자가 흰죽을 끓여왔다. 공용으로 부담하는 수도세며 전기세 따위를 십 원도 안 깎아주고 착착 받아 가는 얄미운 구석이 있기도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살아온 지도 벌써 삼 년이 넘었고 정도 들었다. 여러 군데 옮겨다니며 사글세방을 전전해보았지만 다른 집보다는 세가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었다.
"얼마나 아프면 결근을 다 할까. 원체 그런 일 없더니만"
"몸에서까지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걸 보면 나도 이제 힘에 부치나 봐요""에이그, 무슨 소리야. 돈 많이 벌어서 식도 올리고 좋은 집으로 이사도 가야지. 요즘 세상이 어디 결혼식 안올리고 살았다고 흉잡힐 세상인가 원. 나이도 겨우 서른이면 한창 나인데 뭐가 걱정이야. 내 그래서 하는 소린데 말이야, 섭섭케 생각지 말고……. 반장한테 얘기 다 들었어. 어쩔려구 그래. 앞날을 생각해야지. 집 나간 사람 믿고 마냥 기다리다가 애 덜컥 낳을 참이야? 애는 나중에 낳아도 되잖어. 냉정하게 마음을 먹어야돼"
침을 튀겨가며 얘기하는 주인 여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침 냄새에 신물이 올라오는 것 같고 아기의 꿈틀거림이 조그맣게 느껴졌다.
D시 역에 내렸을 때에도 주인집 여자의 말이 쉽게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역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걸어가는 내 모습은 솜뭉치가 빠져나간 인형 같았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
죽은 몸뚱아리 속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체, 이그러진 등허리 살갗의 세포를 배합 받아 무럭무럭 커가고 있을 생명체를 생각하자 문득 준혁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소름이 돋았다.
출발하기 전에 미리 전화를 하고 왔는데도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사이 혹시 깜빡 잠이 든 건 아닌가 하고 몇 번이나 초인종을 눌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옆집에라도 물어볼까 하다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그만두었다. 경비실에 물어보기로 하고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파트 생활을 몹시 답답해하던 엄마였다. 항상 근처 놀이터나 공원으로 바람을 쐬러 다닌 덕분에 경비 아저씨도 익히 얼굴을 알고 있을 터였다. D시의 변두리 지역에 있던 시골집은 5년 전 관광단지 조성으로 인한 도로 확장공사 때문에 없어졌다. 엄마는 정부에서 지급한 보상금을 가지고 가까운 인근 마을로 이사를 갔으면 했다. 평생 농사만 짓다 손을 놓은 분이라 시가지로 나와 생활하기가 어색해서였다. 하지만 오빠의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어차피 다른 동네로 이사갈 바에야 시내의 아파트 생활이 편하다는 게 이유였다. 외아들로서 직접 모시지 못하는 죄책감이 가장 컸을 테지만. 오빠는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해 결혼도 상사의 집안과 맺었다. 그러나 오빠가 엄마를 서울로 모시고 가 함께 살자고 해도 엄마는 끝내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들을 출세시키는 게 그렇게 소원이었으면서 엄마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 만이었다. 경비실 창문을 두드리려는데 정류장 큰길가에서 걸어오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그 동안 살이 피둥피둥해져 작년 겨울 내가 만들어 드렸던 털스웨터를 입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엄마가 아닌 줄 알았을 것이다. 손에는 시장 바구니 대신 대형 할인 마트의 비닐 봉투에 장거리들이 잔뜩 담겨 있었다. 정신 어지럽다고 큰 슈퍼에는 절대 다니지 않던 엄마였다. 재래시장에 가면 뭐든 없는 게 없고 값도 깎을 수 있는데 뭐하러 그런 곳엘 가느냐던 엄마였다. 비닐 봉지 속에 꾸역꾸역 쌓여져 있는 식료품들을 보자 좀 의아스러웠지만 우선 달려가 짐을 받아들었다.
"엄마, 이게 다 뭐예요?"
"뭐긴 뭐여 장봐왔지. 저 앞에 마튼가 뭔가가 생겼는데 볼거리 살 거리 천지다, 천지"
"엄마가 언제부터 그런 데 다니셨다고. 그리고 뭘 이렇게 많이 사셨어요. 혼자 다 드시지도 못하면서"
"의사가 많이 먹으라고 그러더라"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는 식탁 위에 장거리들을 와르륵 쏟아 놓았다. 돼지고기며 시금치, 오이, 버섯, 콩나물, 간고등어, 과일 등 보통 시장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것들이 깨끗하게 포장되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도대체 얼마나 편찮으신 거예요? 나랑 같이 병원에 다시 가봐요"
"걱정 할 거 없다. 의사가 하는 말이 잘 먹고 푹 쉬면 항첸가 뭔가가 생겨서 괜찮다더라"
의사는, B형 간염의 보균자는 예상외로 많이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잠복기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보균자는 6개월에 한 번씩 항원에 반응하는 항체검사를 받는데 그런 경우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도 아니고 예방차원이기 때문에 뚜렷한 치료라는 게 없다는 것이다. 저절로 항체가 생기도록 영양소를 많이 섭취하고 피로하지 않게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엄마의 말처럼 정말 걱정할 것 없는 병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당신이 하신 말씀과는 달리 유난히 건강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아니 생활 습관 자체가 많이 바뀐 것 같았다. 살 때문에 몸집은 비대해졌지만 오히려 몰라보게 젊어진 것 같기도 했다. 아파트 생활이 항상 비좁다고 필요 없는 물건들 하나라도 처분하는 게 일이었는데 그동안 조화로 된 화분이니 옆 동의 아무개네 집에서 얻어왔다는 수석 따위, 바자회에서 하나 구입했다는 싸구려 그림 액자들이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 냉장고에는 평소에 즐기지도 않던 토마토, 키위 같은 과일들이 칸칸으로 채워져 있었고 고기는 아예 떨어지지 않게 먹는 것 같았다. 안방에 펼쳐져 있는, 아직 드라이 클리닝 냄새조차 가시지 않은 황토색 옥 차렵이불 또한 확연히 달라진 것 중 하나였다. 물론 환갑도 넘은 노친네가 궁색하고 쓸쓸 맞게 사는 것보다야 좋은 일이었다. 이제 인생을 즐기면서 살 때도 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내 가슴 한 구석에는 엄마의 이런 변화들이 낯설고 어색할 뿐이었다. 엄마가 살아온 세월과는 왠지 다르게 느껴졌던 것이다.
"드르륵 득"
방 구석구석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있는 사이 거실에서 믹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귀에 와 박히는 순간 온 몸의 신경세포가 일어나며 일제히 바늘을 꽂았다. 비로소 나는 엄마에게서 감지되었던 낯설고 어색한 변화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막 갈아진 키위 주스를 투명한 유리컵 두 개에 따라내고 쟁반에 받쳐 왔다. 깔끄러운 씨알들이 간지러워 잘 넘어가지도 않는데 엄마에게서는 식도로 넘어갈 때마다 꿀꺽 꿀꺽 소리가 났다. 엄마는 살아있었다. 적어도 살아 숨쉬는 사람의 악착같은 생기가 보였다. 주름이 지고 세월의 이끼와 때가 얼굴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어도 엄마는 분명 기다릴 항체가 뚜렷이 있는 생명체였다. 그 곁의 나는 솜 내장이 터져 나와 헝겊 쪼가리만 남은 인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여적 사귀는 사람도 없이 혼자냐? 다들 제 짝 만나서 가정 이루고 사는데 너만 달랑 혼자인 거 생각하면 내 가슴팍이 꽉 막히는 거 너도 아는가 모르겄다. 밤새 너 자는 얼굴보고 있자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 오빠가 도와준다고 하면 잠자코 있을 일이지 싫다고 그럴 거 뭐 있어. 아직도 가족들이 원망스러운 거여?"
아침상을 치우면서 엄마는 내 가슴에 맺혀 있던 똬리를 살짝 건드렸다. 지난날 문신처럼 새겨진 상처에 대한 지독한 강박감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지만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괜찮아, 지금 생활에 익숙해져 편해요. 혼자서 잘 살아왔는데 갑자기 오빠한테 의지할 필요도 없구요. 내 걱정은 마세요. 진짜 중병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여하튼 엄마 모습이 보기 좋아요. 은근히 걱정했었는데"
"너 보기에는 내가 오래 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러는 것 같으냐?"
엄마는 행주로 식탁 훔치던 손길을 멈추더니 잠깐 허공을 바라보았다.
"오래 살면 좋기야 할 테지만 늙은이 이만큼 살았으면 됐지 얼마나 더 큰 욕심이 있겄냐. 나는 다만, 너들한테 짐 될까봐서 그런다. 몸 성히 죽는 것도 복이고 자식들 위하는 길이여. 내 몸 어디 고장나면 니 언니들한테 수발 들으라고 하겄냐, 고생 모르고 자란 니 올케한테 의지를 하겄냐. 너한테 제일로 미안해서라도 내 몸 내가 잘 챙겨야지. 수술 시켜줄 것을. 흉터만 아니었어도 시집가서 남부럽지 않게 살지 않았겄냐"
만약 서울 같은 큰 도시의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았다면 등의 화상 자국이 지금처럼 심하게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시나 등짝에 흉진 거는 안 됐지만 수술까지는 못 시킨다"
밤중에 화장실을 가다가 안방에서 끊길 듯 말 듯 작게 흘러나오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지워버리려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다가와 등의 상처를 콕콕 찔러댔다. 나의 가치는 겨우 그 것 뿐이었다. 하지만 죄의 낙인처럼 선명하게 찍혀있는 화상 자국을 등에 업고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서울로 가서 수술을 받고 싶었다.
화장실 옆 빈 텃밭에는 개를 많이 가둬 놓고 키웠다. 시골에서 개 판 수입은 겨우내 가용돈으로 긴요하게 쓰이곤 했다. 집에서 키우던 개 다섯 마리를 팔자 그 밤으로 미리부터 알아두었던 서울행 막차를 타고 집을 나왔다. 아버지가 비밀스럽게 보관하는 작은 돈궤를 알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목침에 구멍을 뚫어 벽장 열쇠를 보관했으니까. 그 돈이 수술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란 걸 알았을 때는 집으로 돌아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엄마, 아직도 그렇게 눈치에 시달리며 살아요? 제발 그러지 좀 마. 이젠 벗어날 때도 됐잖아요. 눈치 보며 망설였던 건 내 화상 자국 하나로 끝내란 말예요!"
뱃속의 아이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미 내 마음을 눈치채고서 창백한 낯빛으로 떨고 있는 것 같다. 문득 엄마가 기다리는 항체가 나에게는 영원히 생기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혁 또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민선영씨, 이제 수술 들어갈 거예요"
언제 왔는지 간호사가 소독약 냄새를 풍기며 서 있다. 이상한 일이다. 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방금 전까지도 아무런 감정의 흔들림이 없었는데 꼭 죽으러 가는 사형수처럼 몸이 바르르 떨린다. 옷을 갈아입고 수술대 앞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다리가 후들거려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없다. 나의 몸이 어떻게 파헤쳐질지 상상하니 눈이 질끔 감기면서 떨어져나갈 아이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올랐다. 죽을 것 같은 공포 앞에서야 비로소 나는 살고 싶은, 살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아이도 살리고 나도 살고 싶었다.
나는 차가운 기계 위에 눕혀졌다. 수술 장비가 나를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맨살과 기계의 교감 속에서 숨을 고르게 쉬어보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심장 박동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빨이 달그락거렸다.
"나, 나, 나는 어떻게 되죠?"
"전체 마취를 시킬 거니까 아무 것도 못 느낄 거예요. 울지 마세요. 흥분하면 마취가 잘 안되니까요"
간호사는 높낮이가 일정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살고 싶었다. 형광등에 반사되어 징그럽게 번득이는 은빛 수술 도구들을 보자 이대로 수술대에 누워있으면 영원히 깨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은 욕망이 참으로 무섭다는 걸 알겠다. 지금까지 내 삶을 엄살이라고 비웃어도 좋다.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나도 살고 아이도 살리고 싶다. 살아내는 일, 거북이 등짝 같은 피부 껍질을 짊어지고라도 살아내야 한다고 준혁이 악을 쓰며 닦달하는 듯한 소리가 온몸의 신경세포를 사정없이 긁어댔다. 서울행 열차에 오르면서 인파와 찬바람에 섞여 겨우 등뒤로 꽂혔던 엄마의 목소리가 명치 주변을 마디마디 꽉꽉 짓눌러왔다.
"깨물어서 아프기라도 하면 오죽 좋을꺼나. 너는 내 제일 아픈 손가락이어야 이것아"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아. 살아라. 살아내야 한다.
날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무슨 정신으로 수술실을 빠져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구토가 치밀어 오르고 잠깐 수술대를 벗어나자 무작정 병원 문을 팽개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황당해진 간호사들 틈에서 미친년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죽기살기로 줄행랑을 쳤다. 큰길을 지나 골목 모퉁이에 들어서자 비죽비죽 웃음이 나오면서 눈물 콧물로 뒤범벅된 얼굴이 튼 살처럼 아려왔다. 그 위로 촉촉한 입자가 하나 둘 씩 내려앉았다. 차갑기보다 부드러웠다. 눈이었다. 어둠 속을 뚫고 마술처럼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내려앉자마자 자취 없이 사라졌지만 다시 또 같은 자리에 내려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올해 내리는 첫눈을 보며 부푼 탄성을 자아내는 것 같았다. 눈은 머리와 눈썹 위에도 내려앉고 어깨와 손등으로도 내려앉았다. 그리고 어떤 입자는 잠바의 뒷목 살 틈 속으로도 들어갔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송이에 이내 시야가 막막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득히 남아있음을 느낀다. 배를 그러안고 한 발자국씩 눈 속을 벗어나고 또 벗어났다. 비로소 배가 몹시 고파왔다.
〈끝〉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국가 위기에도 정쟁 골몰하는 野 대표, 한술 더뜨는 與 대표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김건희 특검법, 대통령 거부로 재표결 시 이탈표 더 늘 것" 박주민이 내다본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