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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 -조 유 인

실수로 들고 있던 유리잔을 떨어뜨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유리잔은 바닥에 부딪치며 단 한번의 파열음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렸지요. 소리가 빠져나간유리잔, 그것은 꼭 혼이 빠져나간 몸뚱어리 같았습니다. 어쩌면 깨어지는 순간에 들린 바로 그 소리가부서진 유리조각들을 그때까지 하나의 잔으로 꽉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금관 역시 소리의 다른 모습일지 모릅니다. 금덩이를 천번도 넘게 두드려펴던 소리, 연푸른 경옥을 쪼개어 갈고 갈던 소리.. 그 많은 소리들을 고스란히 쌓아 빛으로 일으킨 나무, 그 위에 따로 가린 고갱이들을 곡옥과 영락으로 빚어 찰랑찰랑 늘어뜨린,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소리의 변용 말이지요.

빛의 몸을 입은 소리, 그것을 머리 위에 두신 임금님에겐 그 빛이 온 몸을 휘돌아 마침내 세상을 다스리는 자애로운음성으로 화했을 법합니다. 정말 그래요. 그쯤은 돼야 소리가 소리를 부른다는 이치 그대로, 여항과 저잣거리의 태평가에서부터 깊은 산험한 골짜기 이름 없는 백성들의 작은 탄식소리까지 비로소 그 사슴뿔 같은 입식 속으로 낱낱이 빨려들지 않았겠습니까.

가볍고 얕은 소리들만 웃자라 오래고 실한 믿음들을 하나둘식 허물어 가는 나날들, 나는 곧잘 박물관을 찾아 금관 앞에 섭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은하의 가장 빛나는 한 부분을 옮겨온 것만 같은 빛무리에 휩싸여, 까마득 흘러간 저편의 소리에 닫혔던 마음이 활짝 열리곤 하는 것입니다. 마치도 행방이 묘연한 만파식적을 다시 찾아 듣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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