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정치적 입양의 문제

국회의원 3인의 이적파동으로 인해 정국이 다시 얼어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렵게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간의 4일 여.야 영수회담도 '의원 꿔주기'와 '96년 안기부 돈 총선자금 유입수사'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첨예한 시각차로 결렬됐다. 또한 '의원 꿔오기'에 반발한 자민련 강창희 부총재가 교섭단체 등록날인을 거부, 자민련의 교섭단체 등록도 무산될 상황에 처해있다. 현재의 경제난과 민생고를 직시한다면 정쟁보다 시급한 것은 생산성있는 정치복원이다. 소수여당으로서는 궁여지책일지 모르나 자민련과의 공조 복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여.야 상생의 정치틀을 세우는 일이다. 이번 민주당의원들의 당적 바꾸기가 정국악화의 냉기류를 몰고오는 가운데 이것이 새삼 인위적인 정계 개편의 신호가 아닌가 하여 언론과 시민단체들까지 시비가리기에 나서고 있다.

어떤 언론은 당적 바꾸기가 국민대표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의 본본을 벗어난 행위이기 때문에 해당자는 국회의원직을 사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원상회복을 주장한다. 의원 세 사람을 잃어버린 소수 여당은 그것을 배신행위로 몰아세우기는커녕 살신성인이라고 한다.

필자는 현실정치에 관해 깊이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지난 총선 직후 국회교섭단체 구성인원의 하향조정 문제를 놓고 CBS가 주선한 어느 정치학 교수와의 논쟁에서 나는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자민련 17석의 실체를 무시해서는 안되며 그렇기 때문에 다소 작위적이긴 해도 국회법상 교섭단체 구성인원의 하향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편 적이 있었다.

자민련 교섭단체 만들기를 놓고 볼때, 국회법 개정을 통한 문제해결보다는 정치적 입양을 통한 문제해결이 훨씬 좋은 선택이다. 만약 국회법 손질을 통해 자민련 살리기를 꾀하려 했다면 거친 몸싸움과 날치기,그로 인한 국회 파행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의사당에서의 몸싸움과 욕설 대신 정치적 입양을 통한 문제 해결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간에 다양한 정치적 논의를 불러일으켰고 그 최종 평가를 유권자의 몫으로 돌릴 수 있어 훨씬 생산적인 측면이 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문민정부 아래서도 사정의 칼날 아래서 의원들의 당적 바꾸기가 있었다. 그 당시 상황은 사법정의와 정치적 계산이 혼합되어 법의 권위와 정치적 신뢰 모두에 타격을 입혔다. 그에 비할때 정치적 입양을 통한 문제 해결은 최악의 경우 정치적 코미디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지만 법치에까지 악영향을 끼치지 않아서 좋다.

이적파동의 당사자들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런 점에서 과격해 보인다. 국회의원 각자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당적 이탈을 금지한 법률이 없는 터에 이적이 의원직을 내놓을 만큼 중대한 불법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실정치를 이상적인 수준에서 관념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편협하다. 그렇다고 현실정치에 가치 추구와 원대한 이상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정치란 현실에 바탕을 두되 현실에 얽매여서는 안되고, 이상을 추구하되 하늘에서 별을 따는 몽상에 빠져서는 안된다. 필요가 변화를 몰고 오지만 그 변화가 정당화되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절차와 명분도 갖추어야 한다.

정치적 입양이 정당성을 지니려면 집권 여당의 공조 복원으로 민생고에 신음하는 국민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고,그들의 차가운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지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또한 공조 복원을 넘어 상생의 큰 정치틀을 세워야 한다. 만에 하나 인위적 정계 개편의 노림수에 불과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썩은 정치의 반복이요, 끝내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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