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치과의사 故 박재훈옹 '봉사 외길'

평생 인술을 펼친 '나환자들의 아버지' 박재훈 전 경북치과의사회장(73)이 지난 4일 타계, 6일 빈소인 대구보훈병원을 떠나 평생 의료봉사의 동반자였던 부인의 묘소(경기도 의정부시)옆에 묻혔다.

치과의사였던 박씨가 남긴 재산은 초라한 전세집과 헌 운동화 한켤레, 십수년간 입은 단벌 양복이 전부. 동생의 아들로 박씨에게 양자온 아들 만식(32)씨에게는 유산은 커녕 박씨가 말년에 당뇨치료로 남긴 병원 빚만 안길 정도로 철저히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다.

박씨가 의료봉사의 길을 택하게 된 것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6.25때 군의관으로 종군하다가 하복부를 심하게 다치면서부터. 후송된 대구 육군병원에서 2세를 둘 수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고 낙심한 박씨에게 당시 간호장교였던 유명조(아내)씨는 "전쟁때 이미 죽은 몸이니 남은 인생은 남을 위해 삽시다"며 다독여 남편이 평생 의료봉사의 길을 꿋꿋하게 걷도록 내조를 아끼지 않았다.

1963년 대구 동촌에서 치과의원을 개업한 박씨는 일주일에 한번씩 성주, 왜관지역 나환자촌을 정기적으로 찾아 나환자들의 치아를 돌봤고, 병원수익금은 수시로 복지시설에 내놨다. 지난 77년에는 2급 상이용사로 받게 된 종신 원호금까지 몽땅 사회복지시설에 기탁했다.

"근년에는 개인연금까지 사회에 희사, 정작 본인의 지병 치료비도 없었습니다"

라이온스 활동을 같이한 이의정(58) 대구동라이온스클럽 회장은 "지역 의료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고인은 3, 4년전 병원문을 내릴때도 모든 재산을 장애인시설에 기증했다"며 고인의 철저한 청빈정신을 돌이켰다. 홍동대 대구치과의사회장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치과의사회의 큰 별이었다"며 나보다 남을 위하는 어려운 삶을 택했던 고인의 봉사정신을 되새겼다.

"남에게 폐가 되니 부음(訃音)을 돌리지 말라"던 고인의 쓸쓸한 빈소와 마지막 길을 지켜본 양아들 만식씨와 몇몇 지인들은 "이제는 편히 쉬시겠지요…"라며 그를 기렸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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