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난해 인기드라마 사극·복고 바람

지난해 한국영화 최고작으로 꼽힌 '공동경비구역 JSA'에 대해 이의를 달 관객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386세대라면 80년대 격동의 세월을 지나며 순수했던 한 인간이 폭압적 사회의 모순에 휩쓸리며 일그러져 가는 과정을 그린 '박하사탕'을 더 높이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적 재미가 탄탄한 '공동경비구역 JSA'에 비해 재미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박하사탕'이 갖고 있는 강점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향수'. 과거란 쓰라린 기억으로 점철돼도 시간의 두께가 아련한 정서를 만들어내게 마련이어서 인간을 약해지게 한다.

지난해 방송된 TV드라마 중 성공작들은 대부분 과거지향적이거나 현실을 잊게 만드는 줄거리가 대부분이어서 눈길을 끈다. 방영 내내 MBC의 효자드라마였던 '허준'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고 요즘 서서히 인기를 얻고 있는 '황금시대'도 일제 치하가 시간적 배경이다. KBS의 미니시리즈 '가을 동화'는 감상적이지만 그림같은 화면으로 눈길을 모았고 '태조 왕건'은 후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다. SBS의 주말드라마 '덕이'도 한국 전쟁부터 시점을 잡은 과거지향적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들은 현재에서 벗어난 시대나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함으로써 현실을 잊게 하거나 현실을 되돌아보도록 한다.

지난 한 해의 문화현상의 특징에 대해 '복고풍' '향수'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했듯이 드라마에도 이러한 진단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 것 같다. 2000년이라는 해는 숫자의 거창함이 주는 의미가 커서인지 미래에 대한 희망의 크기만큼 불안도 컸던 것일까? 현실의 경제적 어려움과 각박함이 현실을 잊고 싶게 만든 것일까? 아마도 이러한 것들이 모두 원인이 됐을 것이다.

최근 케이블TV 드라마넷을 통해 재방영됐던 '모래시계'도 95년 당시 70년대와 80년대의 아픔을 절실하게 그려내 열렬한 호응을 받았었다. 현실에 대해 약해지고 도피하고 싶은 이들은 '모래시계'의 주인공 태수의 강렬한 눈빛, 허준의 심지곧은 모습, 준서와 은서의 아프지만 달콤한 사랑, 궁예의 기개에 대리만족을 느끼고 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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