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국 개혁-보수파 권력투쟁 본격화

1989년 중국 톈안먼(天安門) 시위 당시 대응책을 논의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 비밀 기록이 미국.홍콩 등으로 유출됐다. 대처 방안을 놓고 개혁-보수파 간에 심각한 의견 대립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자료의 유출은 앞으로 1, 2년 내에 있을 중국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권력 쟁투의 한 방법이 아닌가 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의 권력 변동 가능성=톈안먼 사태 직후 집권한 장쩌민 당총서기 겸 국가 주석은 내년 10월 제16차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에서 당 총서기직을, 2003년 3월 전인대(全人大)에서 국가 주석직을 각각 물려줄 예정이다.

이때문에 이번 문건 유출은 개혁파들이 차세대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당내 입지 강화에 나서면서 선택한 전술의 하나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장쩌민으로 보면 권력 말기에 접어 들면서 나타난 권력누수 현상일 수도 있는 것.또 미국의 정권 교체기와 맞물림으로써 또다른 해석도 나오고 있다. 지금 시점은 미국으로서도 부담 없이 톈안먼사태 문제를 다시 한번 거론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이 극비문건들의 내용 공개를 통해 미국이 중국을 다시 한번 흔들어 보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그래서 제기되고 있다. 톈안먼 사태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발하게 진행되면 결국은 현재의 지도부에 타격과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문서의 실체=중국의 한 공산당원이 비밀 문건들을 발췌해 디스켓을 통해 미국으로 유출, 공개했다. 출판에는 미국의 전문가들이 거들었다.

489쪽에 이르는 출판물은 '퍼블릭 어페어스' 회사가 출판했으며, CBS 방송은 7일 시사 프로그램 '60분'을 통해 내용을 분석 방영했다. 그외 계간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잡지도 1.2월 호에 내용을 요약 게재했고, 미 주요 일간지들도 보도했다. 홍콩의 인권단체들도 7일 당시 발언록을 공개했다.

톈안문 사태가 터지자 그해 5월20일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리펑(李鵬) 등 강경파가 집권하면서 자오쯔양(趙紫陽, 현재 80세) 공산당 총서기가 제거됐으며, 그 후임에 장쩌민이 임명됐다. 그리고 6월4일 군의 강제 해산 과정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

극비 문서 중 일부는 상하이 시장이던 장쩌민이 당의 지시를 잘 따른 공로로 리셴녠(李先念)에 의해 총서기 후임자로 추천됐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때문에 이번 문서 공개는 장쩌민 반대파의 치밀한 작전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최고 지도부는 시위 사태에 상상 보다 더 큰 두려움을 갖고 있었으며, 미국.대만 등과 해외 반체제 인사 등 외부 세력이 시위를 사주하고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되면서 유혈진압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런 생각은 리펑 총리가 주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간추린 대화록

△5월16일(당 정치국 상무위)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학생들의 단식 투쟁이 4일째 계속되고 있다. 학생 대표들도 통제할 힘이 없다고 말한다. 양샹쿤(楊尙昆) 국가 주석=베이징은 무정부상태 같다. 역사적인 중.소 정상회담 환영행사를 공항으로 옮겨 해야 했다. 자오=(시위를 동란이라 보도한) 인민일보 사설이 반발을 사고 학생들 사이에 불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리펑(李鵬) 총리=사설은 젊은 학생들의 감정을 악용하려는 소수를 겨냥한 것이다.

△5월17일(덩샤오핑 자택 회의) 덩=쯔양 동지, 이것이 동란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오래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은 군대를 불러오고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자오=그렇지만 샤오핑 동지, 나는 그런 계획을 수행하기 곤란하다. 덩=소수는 다수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자오=당의 노선에 승복하겠다.△5월21일(당 중앙판공실 서기국 기록). 덩=자오쯔양은 명백히 동란 쪽을 지지하고 있으며 동란을 자극했다. 그를 계속 놔 둘 필요가 없다. 천윈(陳雲.원로)=리셴녠(李先念) 동지가 장쩌민이 후보로 적합하다고 추천했다.

△5월27일(덩의 집) 덩=장쩌민, 리펑, 차오스(喬石), 야오이린(姚依林), 쑹핑(宋平), 리루이환(李瑞環)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하고, 장쩌민 동지를 총서기로 하겠다.

△6월2일(당 중앙판공실 기록). 리펑=미국 대사관에 고용된 자들이 공격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면서 동란이 시작됐다. 일부는 CIA요원이다. 이들을 반정부 조직원들과도 정기적으로 접촉하고 있다. 대만 국민당 첩보 기관 등 적대적 세력들이 관광객,사업가 등으로 가장한 첩자를 파견하고 있다. 국민당 첩자들이 베이징.상하이 등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시위는 공산당과 사회주의 시스템 전복이란 목표를 가진 국내 반동세력과 외부 반동세력들이 공모해 촉발되고 있다는 조짐이 늘고 있다.

왕전(王震) 국가 부주석=샤오핑 동지, 군대는 도대체 뭣하러 있는가. 누구든 공산당 정부를 전복시키려 하는 자들은 죽어 마땅하다.

덩=이번 사건은 전지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서방 세계, 특히 미국은 중국내 소요사태를 일으키기 위해 온갖 선전기제를 동원해 소위 민주주의자들과 반대파들을 선동하고 있다. 몇몇 서방국들은 '인권' 문제를 들먹이거나 사회주의 시스템이 위법적이라면서 우리 국가 주권을 침해하려 하고 있다. 리펑=나는 즉각 톈안먼광장을 정리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덩=계엄군이 오늘밤 정리 작전에 들어가도록 할 것을 제의한다.

외신종합=모현철기자 mohc@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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