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실향민 강성덕씨의 새해 희망

"한번 물꼬를 텄으니 이젠 쉽게 만날 수 있겠지요"지난해 생전에 못만날 줄 알았던 부모, 형제자매를 끌어안고 상봉의 기회를 가졌던 이산가족들은 '짧은 만남, 긴 이별'에 재상봉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50년간 헤어진 가족의 생사조차 알지못한 채 다른 이산가족의 상봉장면만을 지켜봐야했던 실향민들도 있다. 이들 모두 새해에는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와 서신왕래로 반세기동안 풀지못한 이산의 아픔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평양 인흥리가 고향인 강성덕(71·달서구 진천동)씨도 지난해 8월 언니를 만난 뒤 "평양에서의 3박4일동안 경황이 없어 못다한 말이 너무 많다"면서 "다음에는 꼭 할말을 미리 메모해 가야겠다"고 재상봉을 기대하고 있다.

51년 1·4후퇴때 9남매중 둘째언니 순덕(75)씨만 남겨둔 채 친정식구들과 대구로 피란온 강씨는 지난해 꿈에 그리던 언니를 만났다. 그러나 강씨는 언니와 함께 꼭 만나야만 할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전쟁이 나자 "친정에 가 있으면 뒤따라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갓 돌을 넘긴 아들을 맡긴 채 떠난 남편 이재식(75)씨였다. 통일부에 남편과 시댁식구도 찾겠다고 했으나 남편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고 평양에서 만난 언니도 처음엔 "죽었어. 뭘 알려고 해"라고 말해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강씨는 아들(51)이 챙긴 남편 선물도 들고 갔었다.

평양방문 후에도 줄곳 남편생사를 확인하지 못했다던 강씨는 최근 가슴속에 묻어둔 얘기를 털어놨다. "평양에서 언니에게 남편소식을 계속 캐묻자 전쟁이후 남편이 여러 차례 고향집을 찾았다는 얘기를 들려줬다"고 말했다. 1·4후퇴 이후 수차례 평양 인흥리 옛집을 찾았던 강씨 남편은 '아내와 아기가 폭격에 맞아 숨졌다'는 이웃주민의 말을 믿고 강씨 제사를 지냈으며 이후 재혼도 했다는 것. 강씨 역시 평북 정주의 친정집에서 피란 직전 인흥리 집에 들렀다가 '남편이 폭격에 맞았다'는 얘기를 듣고 지금까지 죽은 줄 알고 제사를 지내왔다.

강씨는 "언니를 만나고 남편 생사도 알게됐지만 평양에서 나를 찾지 않은 남편이 원망스럽다"면서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탄식했다.

강씨는 그러나 "면회소가 설치되고 남북왕래가 잦아지면 또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가 나이 든 이산가족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루빨리 한을 풀어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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