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재해 교수가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3)까마귀에 빗댄 나무꾼의 길가마귀 소리

'어느 게 숫까마귀인지 암까마귀인지 모르겠다' 누가 옳고 그른지 분별하기 어려울 때 하는 옛말이다. 뭐가 뭔지 분간하지 못할 때는 '된장인지 똥인지도 모른다' 하기도 한다. 지금 서로 치고 받는 '3김1이의 이전투구'가 꼭 이와 같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기껏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정몽주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성계 부자의 더러운 권력다툼에 끼지 말라는 뜻으로 부른 노래이다. 여기서 까마귀는 권력에 탐닉하여 음모와 살생을 일삼는 정상배들을 비유한다. 백로는 물론 선비의 깨끗한 지조를 뜻한다. 그러나 갈가마귀 소리에서 까마귀는 미천한 처지의 나무꾼과 동일시되어 비유되는 존재이다.

◈이내 소식 전해 다오

나무꾼들은 스스로 갈가마귀에 견주어 자신들의 미천하고 절박한 처지를 자탄하여 노래하는 데 일정한 형식이 있다.

귀야귀야 가리갈가마귀야~

심에심곡산 가리갈가마귀야~

이 대목이 노래의 들머리에 고정되어 있으므로 어사용의 하나이되, 특히 '갈가마귀 소리'라 한다. '귀야귀야'는 까마귀의 마지막 음절과 운이 일치하고, '가리'와 '심'에는 각각 '갈가마귀'와 '심곡산'의 첫음절과 운이 맞도록 노래되는 것이 특징이다. 심곡산은 골짜기가 깊은 험한 산을 일컫는데 '심에'가 덧붙여져서 더 강조된다.

들머리 소리에 이어서, "의성땅 갈가마구야 이내 소식을 전해다오/ 날라가는 저 기럭아 이 내 소식을 전해다오/ 산은 내 산이요 물은 내 물이 아니로다/ 주야장천 흘러가는 물을 내 물이라꼬 할 수 있나" 하는 식으로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여남은살부터 팔공산에 나무하러 다닌 대구 평광동 송문창 어른의 소리다.

날아가는 새들에게 자신의 한스런 소리를 전하고 싶은 뜻이 간절하다. "산은 산, 물은 물"이라고 한 성철 스님의 화두처럼 세상물정에서 해방된 고승의 정서와 다르다. 요지부동의 험한 산은 자신의 가망없는 삶과 같다. 태산같은 삶의 무게가 자신을 꼼짝 못하게 짓누른다. 그러나 골짜기를 타고 요리조리 굽이치며 흐르는 물은 자유롭다. 낮은 곳을 향해 제멋대로 흘러가는 물은 해방된 모습이다. 그래서 '산은 내 산이되 물은 내 물이 아니다' 물처럼 어딘가 자유롭게 흘러가고 싶은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나무꾼이다.

◈장가 한번 못 가보고

"후야후야 슬프다 우리 낭군님은 점슴 굶고 나무하러 갔네/의복이 남루하니 골목출입이 번개로데" 소리하는 주체를 아내로 바꾸어서 나무꾼인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적나라하게 노래한다. 점심조차 굶고 나무를 해야 하는 형편에다가, 누더기 옷이 험해서 남의 눈에 띌까 골목길을 번개처럼 내달아야 하는 구차한 처지가 잘 드러나 있다.

니 껌다고 한탄 마라

니 껌은 줄은 온 조선이 다 알건마는

이내 속 울홰병 든 줄은 어느 누가 알아주리

영천 손인술 어른의 소리이다. 속에 울화병이 든 자신에 비하면, 먹이를 찾아 떼지어 떠도는 갈가마귀의 신세는 그래도 낫다. 울화병으로 심중에 타는 불은 꺼 줄 사람은커녕 알아 줄 사람조차 없으니 더욱 기가 막힌다. 빈곤한 살림살이와 병들고 늙은 몸이 고난인가 하면, 장가 못 든 나무꾼의 딱한 신세는 더욱 큰 고난이다.

우리 머슴놈들 팔자 어찌하여

삼십이 넘도록 장가 한번 못 가보고

지금도 삼십이 넘도록 장가 못간 농촌총각이 적지 않다. 그런데 과거에 머슴질 하면서 이 나이가 되도록 장가 못들면 '제 물에 지쳐' 한 인생을 접은 셈이다. '아이고 내 신세야!' 하는 장탄식이 절로 이어진다. 심에심곡산 가리갈가마귀도 "해가 지니 님의 품에/ 잠자러 가는데" 노총각은 해가 져도 자러 갈 데가 없다.

사십 먹은 이 총각은

어느 품에 갈꼬

저 건너 저 묵밭에는

작년 봄에도 묵더니마는

날과 같이도 올 봄에 또또 묵네

저 건너 묵정밭이 묵어빠지듯이 사십 먹은 노총각이 장가를 못들고 또 묵는다. 삼십 총각은 약과다. 지금 농촌에는 묵어빠지는 40대 노총각들이 애간장 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사람들이 알고나 있을까.

목 지다 황새까마구야

한쪽 다리 부러진 병신까마구야

두쪽 다리 부러진 앉은뱅이 까마구야

목 짜리다 팽대이까마구야

목 짜리다고 한탄 말아라

까마귀도 가지가지다. 목이 지나치게 길거나 짧아서 탈인 까마귀에서 다리가 부러진 병신까마귀에 이르기까지 별난 일로 불행을 겪는 까마귀들이 많다. 이들 까마귀들은 곧 민중의 험난한 처지를 다양하게 상징한다. 집단해고를 앞두고 노동자들이 투쟁도 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농민들이 시위도 하는 경우는 그래도 낫다. 그들의 딱한 사정을 사람들이 알기는 한다. 심지어 지하철역 노숙자에게는 사회복지사들이 찾아와 관심이나 기울인다. 그러나 여기도 끼지 못하며 삶의 병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방치된 상태이다. 병신 까마귀보다 더 딱한 나무꾼들처럼 늙어 가는 농촌총각들의 사정은 더 절박하다.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산천초목 풀잎은 나날이 자라는데/ 이팔청춘 이내 몸은 나날이 늙어가네" 삶의 꿈도 이루지 못하고 나날이 늙는 나무꾼의 신세도 딱하지만, 나무꾼들의 아내도 딱하다. 못 먹고 헐벗은 채 나무를 하러 다니다 죽은 나무꾼의 삶이 과부의 시각에서 처량하게 노래된다.

개모(癸卯)년 보리 숭년에

등개수지비 한 목구여 두시 개씩 넘구다가 걸리 죽은

우리 영감아 개떡 잡소 아

허기진 배에 등겨로 만든 수제비를 한꺼번에 두세 개를 넘기려하다가 걸려죽은 영감을 부르며 하는 소리이다. 죽은 영감을 부르며 개떡 잡수라는 소리가 처절하다. 아내의 처지에서 부르는 소리이지만, 나무꾼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를 예감하는 비장한 대목이다. 등겨 수제비에 목이 막혀 죽을지언정 남의 밥을 엿보지 않는 것이 약하고도 선한 민중이다.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李稷)" 민중은 까마귀처럼 겉은 검게 보이되 속조차 검지는 않다. 따라서 백로 행세를 하며 갖은 술수로 국민을 속이는 정치권에 등 돌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정계는 다시 꼼수를 부려 새해 벽두부터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청와대에서 의원 꿔주기를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다가 비판여론이 드세자, 대통령이 자민련과 공조는 공약사항이며 이는 중죄가 아니라고 변명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최소한 '소죄'는 짓고 거짓말도 한 셈이다. 보안법개정이나 검찰권 중립 등의 발전적 공약들은 외면한 채 자민련 공조 같은 퇴행적 공약은 기어코 지키겠다니 웃을 일이 아닌가. 의원 임대차를 반대하고 "오늘 살기 위해 내일 죽는 법을 택할 수 없다"며 외롭게 투쟁하다 제명당한 강창희 의원에게는 격려가 쇄도한다. "한 사람이라도 이성을 찾아야 한다" 강 의원의 소리이자 민심의 소리이다. 나무꾼들도 총각으로 늙어죽으며 신세한탄은 해도 "색시 꿔달라"는 소리는 차마하지 않는다. 그것이 대죄인 줄 아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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