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재해교수가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4)아낙네들의 처지와 사랑을 노래한 방아소리

설 명절이 닥쳤다. 대목장이 한창 붐빌 때다. 언제부턴가 백화점이 재래시장의 대목장 경기를 앗아갔다. 올해는 어느 쪽도 대목장 경기로 흥청거릴 전망이 없다. 이맘때면 골목에서 디딜방아간도 쿵덕쿵덕 떡방아 찧는 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디딜방아가 없어지자 시장 안의 떡방아간 앞에는 아낙네들이 줄을 섰다. 올해는 이마저 썰렁할 조짐이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 탓이다. 가난한 이에게는 명절이 더 서글프다.

백결 선생이 빈곤한 가운데 설대목을 맞자, 그 아내가 떡방아조차 찧지 못하는 가난에 상심하여 푸념을 하였다. 이에 선생은 가야금으로 방아찧는 소리를 연주하여 아내를 위로하였는데, 이 음악이 바로 후세에 전한 대악(石住樂) 곧 방아소리이다. 이처럼 방아소리의 전통은 신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뿌리깊다. 방아소리나 들으면서 설대목의 상심을 덜어보자.

이 방아는 뉘 방안가

강태공에 조작방아

방아살가진 무슨 나무

대추나무 쌍살가지

방아채는 무신 나무

박달나무루 채를 허세

방아굉이는 무신 나무

오백년 묵은 낙랑장송

철원 사는 안승덕 어른의 소리이다. 원래는 방아확 곁에 앉아서 곡물을 우겨 넣는 사람이 빗자루나 손으로 곡물을 확에다 쓸어 넣으면서 앞소리를 매기면 디딜방아를 밟는 사람이 힘을 주어 방앗고를 들어올리며 뒷소리인 '에여라 방아요'하고 부른다. 대부분의 방아소리는 방아를 '강태공의 조작방아'라고 한다. 방아품을 팔 듯이 일삼아 하는 방아가 아니라 강태공이 낚시질하듯 놀이삼아 하는 방아라는 뜻으로, 일의 고달픔을 놀이로 전환하는 구실을 한다.

이 노래는 방아의 구조를 문답 형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방아를 받쳐놓는 받침대인 방아살가지는 Y자 모양으로 뻗어나간 대추나무 쌍살가지이다. 방아채는 디딜방아의 몸채를 말하는데, 무겁고 질긴 박달나무로 한다. 그러나 방앗공이는 소나무와 같은 무른 나무로 해야 곡식이 바스러지지 않는다. 방아를 찧는 사람은 아낙들이지만 방아를 만드는 사람은 남정들이므로 이 노래는 할아버지가 불렀다.

◈언제나 다 찧고 마을갈까

아낙들의 소리는 다르다. "쿵다쿵쿵다쿵 찧는 방아/ 언제나 다 찧고 마실 가까/ 시어머니 죽으라고 축수를 했는데/ 보리방아 물부어 놓으니 생각난다" 시집살이보다 방아찧기가 더 고되다. 보리방아는 특히 힘들다. 보리를 확에다 넣고 물을 부어서 딱딱한 보리를 불려가며 몇 차례고 거듭 찧어야한다. 누군가 확 곁에 앉아 물에 불은 보리를 우겨 넣어 줘야 하는데, 혼자 손으로 보리방아를 찧으려면 기가 막힌다. 시어머니 생각이 절로 나게 마련이다.

아시댕기 까불러 소를 주고

두불댕기 까불러 돼지 주고

시불댕기 까불러 개를 주고

아씨 싸래기 받아서 갱죽 낄ㅎ이 묵고

쌀 까불러 담아 놓고

우린 님 오까 고대하니

진말린 할머니가 앞소리를 매기면, 그때마다 "얼커덩 덜커덩 찧는 방애 언제나 다 찧고 마실 가꼬" 하며 한점순 할머니가 뒷소리를 받았다. 달성 현풍 소리이다. 후렴구에 방아찧는 고달픔이 묻어나는 반면에, 앞소리에서는 벼를 찧으면서 간절하게 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배어 있다. 벼는 찧는 과정에 따라 키로 까불리면 등겨가 나오고 싸래기도 나온다. 거친 아이등겨는 소를 주고 이어서 나오는 두벌 등겨와 세벌 등겨는 돼지와 개를 준다. 그리고 싸래기는 묽은 갱죽을 끓여서 자신이 먹고, 쌀은 언제 올지 모를 님을 위해 갈무리해 둔다.

◈어깨야 다리야 한심 써라

"궁딱궁딱 찧는 방아/ 우리야 임의 살공이 방아"라고 하는 대목을 보면, 방아 찧는 일을 남녀의 성행위에 빗대어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쿵덕쿵덕 방아 찧자/ 낮으로는 마실 가고/ 밤으로는 방아 찧자" 방아 찧고 마을 가는 일을 밤낮으로 번갈아 하자는 뜻이기도 하지만, 낮방아와 밤방아의 속뜻은 다른 데 있다.

뒷집의 김도령은 찹쌀범벅

앞집의 이도령은 멥쌀범벅

범벅범벅을 범벅노래를 불러보자

경주 소리다. 방아를 찧는데 뒷집 김도령과 앞집 이도령이 등장하는 걸 보면 좀더 노골적이다. 김도령과 방아를 찧으면 찹쌀 범벅이, 이도령과 방아를 찧으면 멥쌀범벅이 된다는 것은 궁합을 말하는 것이다. 흔히 남녀 금슬이 좋은 것을 두고 찹쌀궁합이라고 하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멥쌀범벅이 되는 이도령보다 찹쌀범벅이 되는 김도령 방아가 더 곡진하다는 뜻이다.

한 몸 한뜻 당거 주소

웃가래서 심 써 주먼

밑가래서 심 써 줌세

어깨야 다리야 한심 써라

오늘 밤도 야심허다

방아 씰으는 저 부인네

굉기 괼지 모르는가

괴기사 괼레마는

한바탕만 당겨주소

방아 찧을 때 힘쓰는 과정을 자세하게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그 힘쓰는 일이 성행위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방아찧는 사람이 한 몸 한뜻으로 일치되어 윗가랑이에서 힘을 써 주면 밑에 가랑이에서도 힘을 써 준단다. 그러니 어깨도 다리도 큰 힘을 쓰라는 것이다. 그러나 밤이 이미 야심하지 않은가. 따라서 방아를 그만 찧기를 기대한다. 그러자면 확에서 곡식을 쓸어넣고 까불리는 부인이 '다 찧었다'며 고임대로 방아머리를 고아야 한다. 그런데 부인은 고임대로 괴기 전에 한바탕 더 힘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이놈도 쿵덕 저놈도 쿵덕

이렇게 성을 탐닉하다가 보면 본남편을 제쳐놓고 훗낭군을 보게 된다. 간 큰 아주머니가 그 때도 있었던가.

영감하 홍감아 개떡을 먹게

방아품 팔아서 개떡을 했네

봄보리 개떡은 본낭군 주고

갈보리 개떡은 훗낭군 주자

방아품을 팔아서 주인댁 밥을 얻어먹고 입을 더는가 하면 방아를 찧고 남은 싸래기와 속겨도 얻어다 먹는다. 이것으로 개떡을 만들어 서방을 주는데, 시원찮은 봄보리 개떡은 본낭군을 주고 맛이 나은 가을보리 개떡은 샛서방인 훗낭군을 준다는 것이다. 바람이 나면 남편보다 샛서방을 더 섬기게 마련이다.

각득어미 입으는

술병이나 다를까

이놈도 빨고 저넘도 빨고

각득어미 그거는

방아 호백이나 다를까

강구에서 들은 방아타령이다. 이선학 할머니가 앞소리를 매기면 다른 할머니들이 "어이기 더이기 방애야" 하고 뒷소리를 받았다. 각득은 '각댁(各宅)'의 와음인데, 아무개 댁을 뜻한다. 뭇남성과 접촉하는 여성의 바람기를 사물에 빗대어 노래한 것이다. 각댁어미의 그것은 "방아 확이나 다를까/ 이놈도 쿵덕 저놈도 쿵덕" 갈 데까지 다 간 셈이다.

이 정도 바람이 나면 이웃 소문도 개의치 않는다. 국민의 소리 따위는 안중에 없다. 의원 임대차에 맛을 들인 여당은 의원 한 사람을 다시 주고받아 '막가파' 정치권이란 비난이 드세다.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빗댄 한 시인은 차라리 '니한테 나를 막 준다'고 하는 게 낫다고 했다. 누구에게든 치마끈을 풀 각오가 되어 있는 한 김씨와, 달라면 이놈도 주고 저놈도 주는 다른 김씨의 부적절한 관계가 국민들의 얼굴을 뜨겁게 만들었다. 가난을 달래는 백결 선생의 방아타령과 전혀 다른 위정자들의 방아타령에 설대목 경기가 더욱 얼어붙는다. 날씨조차!

안동대 교수.민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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