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LA 타임스 '기밀문서'보도

미국은 1968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암살기도사건(1·21 사태)과 미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피랍사건으로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됐을 때 박 대통령의 '과음과 엉뚱한 행위'(heavy drinking and erratic behavior)를 크게 우려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28일 보도했다.

최근 미 국부무가 역사학자들을 위해 기밀을 해제한 문서들은 68년 당시 존슨 미 행정부가 박정희의 동요(unstable)를 걱정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국무부 기밀문서를 토대로 한 기사 요약.푸에블로호 피랍사건 해결을 위해 박정희를 만난 사이러스 밴스 미 특사(카터행정부에서 국무장관 역임)는 린든 B. 존슨 당시 대통령과 각료들에게 "박정희는 기분이 언짢고 동요하고 있으며 술을 많이 마신다"고 보고했다.존슨은 "박정희의 과음이 새로운 사실이냐"고 물었다.

밴스는 "아니다. 언제부턴가 그래왔다"고 대답했다. 밴스는 "박정희가 부인(육영수 여사)과 몇몇 보좌관들에게 재떨이를 던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이런 기록들은 미국이 베트남전쟁을 치르는 동안 한반도에서의 새 전쟁 발발을 얼마나 우려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당시 로버트 맥나마라 미 국방장관은 푸에블로호 사건에 대한 백악관의 숙고를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동일시했다.리처드 헬름스 당시 중앙정보국(CIA)장은 한 회의에서 "북한에 언제까지 푸에블로호를 반환하지 않을 경우 중대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게 뭐가 잘못됐느냐"고 물었다.존슨 대통령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그건 우리가 중국,러시아와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고 응수했다.CIA 서울지부장을 역임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는 최근 측근들에게 박정희 전대통령은 "술꾼(drinker)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68년 서울에서 근무했던 또다른 미 관리들은 푸에블로호 피랍후 박정희가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 미국인들에게 화를 냈다며 "우리는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매우 우려했다"고 밝혔다.68~78년까지 박정희 개인비서를 지낸 김모씨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박정희는 점점 더 북한의 공격을 우려하긴 했으나 "그가 북한공격을 생각했다는 것은 부당하다"며 "모든 사람이 그런 조치가 남북한 공멸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김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술을 좋아했으며 (간혹) 많이 마시곤 했다"고 술회했다.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리였던 로버트 코머가 64년 기록한 메모는 "우리는 박정희에게 민주화를 촉진시킬 것을 촉구하는 대신 이런 혼돈스런 지역(한반도)에서는 어느 정도 약간의 독재정치를 용인해야 할지 모른다"고 돼 있다.박정희와 존슨 행정부간의 긴장은 68년 1월21일 북한 무장공비 약 30명이 청와대근처로 침투하면서 촉발됐다. 생포된 한 공비는 "임무가 박정희의 목을 자르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박정희 암살기도사건 이틀 후 푸에블로호 피랍사건이 터졌다.

존슨과 고위참모들은 푸에블로호와 첨단장비 회수를 위해 대북 군사행동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국무부 문서들은 북한 선박 나포 및 침몰, 북한 항구 파괴, 해상봉쇄, 공습 및 비무장지대(DMZ) 일대 기습 등의 가능성을 검토한 것으로 돼 있다.존슨과 참모들은 1월29일 자신들의 목적이 승무원 석방, 한국군의 베트남전 계속 참전, 아시아에서 제2의 전쟁 불원에 있음을 확인하고 대북협상을 결정했다.그러나 협상의 큰 걸림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청와대 기습사건에 분노했던 것으로 미 관리들은 보고했다. 박정희는 북한이 청와대 및 푸에블로호 사건에 대해 군사적 행동으로 응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윌리엄 포터 주한미대사는 워싱턴에 보낸 전문에서 "박정희가 지금 북한 공격필요성에 매우 집착하고 있다"고 밝혔다.박정희는 북한의 (공비) 훈련소를 공격, 제거하길 원했으며 미국이 청와대 기습보다 푸에블로호 사건에 더 중요성을 두는 것에 화가 났다.존슨은 밴스 특사를 서울에 보내 대북협상 결정 배경에는 미 국내정치문제가 있음을 설득토록 했다.밴스의 서면 훈령에는 "올해는 미국 선거가 있는 해다. 푸에블로호 문제는 주요한 선거쟁점이 될 수 있으며 한미관계와 미국의 동남아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돼 있다.존슨 행정부는 경고의 메시지도 아울러 보냈다.

그것은 박정희가 한국군을 베트남에서 철수시키겠다고 위협한다면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로 대응하겠다는 것이었다.결국 박정희는 미국의 푸에블로호 승무원 송환 협상에 따랐으나 미국의 근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주한 미대사관은 2개월도 채 못돼 한국이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적 조치'또는 '대북 선제공격'을 고려하고 있다고 재차 워싱턴에 경고했다.푸에블로호 승무원 80여명은 68년 12월 미 협상대표들이 북한에 사과한 뒤 석방됐으나 미국은 석방직후 즉각 사과를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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