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님타령하는 큰애기들의 물레방아소리
삶이 가지가지인 것처럼 방아도 가지가지이다. 절구방아에서 시작하여 디딜방아와 물방아, 물레방아, 연자방아가 있고 난 뒤에야 마침내 발동기로 찧는 화통방아가 등장했다. 따라서 방아소리도 가지가지가 아닐 수 없다.
산에 오르면 산중방애
들에 오르면 드들방아
물에 내리면 물방애
엿차엿차 방애로다
해 넘어 가는데
어서 찧고 가자
전주지역 소리이다. 산과 들, 물의 운자에 맞추어 이르다 보니 디딜방아도 드들방아가 되고 말았다. 절구와 디딜방아가 인력으로 찧는 방아라면 물방아나 물레방아는 수력을 이용한 방아이다. 물방아는 외다리 모양의 방아에 사람이 발로 밟는 부분을 큰 물통처럼 만들고 물을 끌 어들여 물이 가득 차면 물의 무게에 의해 방아머리가 들리도록 한 것이다. 방아머리가 들리면 균형이 기울어지는 것과 동시에 물통의 물이 모 두 쏟아져 들렸던 방아머리가 방아 확의 곡식을 찧는 것이다.
방애방애 연자방애
방애방애 물레방애
화통방애 또 있잖나
정읍지방의 소리에는 갖은 방아가 다 등장한다. 물방아에서 발전된 것이 물레방아인데, 수력과 도르래의 원리를 함께 이용한 것이다. 물이 떨어지는 낙차를 이용해서 수력으로 큰 물레를 돌리면 그 동력을 방아굴통에 연결시켜 방아를 찧는다. *여러 어른들 들어나 보소
연자방아는 축력을 이용하여 돌리는 거대한 맷돌과 같다. 안반짝(떡을 칠때 쓰는 넓고 두꺼운 나무판) 보다 큰 이 맷돌을 특히 연자매라 하는데, 맷돌은 아래위가 암수 짝을 이루어 결합되어 있지만, 연자방아는 아래짝인 밑틀이 맷돌처럼 누워 있는 위에다 윗틀을 세워서 굴러가도록 장치해 두었다. 워낙 크기 때문에 윗틀에 장치한 후리채를 소에다 연결하여 소의 힘으로 윗짝을 굴려 방아를 찧는다. 눈비를 가리도록 집을 짓고 거대한 연자매를 설치해야 하므로 대단한 공사를 해야 연자방앗간을 세울 수 있다.
여러 어른들 들어나 보소
우리 동네 탄생하야
연지방아를 세울 적에
목수 불러 풍수 불러
터를 닦아 닦은 터에
연지방아를 세울 적에
영주 우상기 어른의 소리다. 연자방아는 대공사여서 어지간한 마을에는 엄두도 못 낸다. 터도 잘 잡고 방아집도 잘 지어야 하며 후리채도 잘 다듬어야 한다. 연자매 돌이야 어차피 사와야 하지만 다른 공사는 마을에서 감당해야 하므로 풍수도 부르고 목수도 부르는 것이다. 연자방아를 설치하는 일이나, 소를 모는 께끼꾼 노릇이나 모두 남정네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어서 소리도 남정네가 부른다. *뒷집 총각이 목매달러 가네
그러나 아낙네들은 연자방아보다 물레방아에 관심이 더 많다. "방아찧는 처자들아/ 삯이나 알고 방아를 찧나/ 삼시 먹고 온돈 받소". 방아품을 제대로 받고 방아를 찧으라는 말이다. 성주 이봉기 할머니의 소리인데, 청년들의 처지에서 노래한 것이다.
혼자 찧는 외가래방아
둘이 찧는 가래방아
남산읍내 물레방아
물을 안고서 빙빙 돌고
머리 좋고 키 큰 처녀는
나를 안고 빙빙 돈다
외가래방아는 한 사람이 방아를 찧도록 가랑이가 하나인 외다리 방아를 말한다. 가래방아는 두 사람이 방아를 찧도록 가랑이가 둘인 양다리방아다. 방아 종류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랑이 수와 찧는 행위 자체에 더 관심이 많다. 어느 것이든 성적 상상력과 맞물려 있다. 이어지는 사설이 이를 잘 드러낸다. 물레방아는 수력으로 회전하므로 사람이 찧는 행위보다 돌아가는 형상에 성적 상상력을 빗대어 노래한 셈이다. 물레방아가 물을 안고 돌 듯이 머리 좋고 키 큰 처녀는 나를 안고 돈다고 하여, 처녀 총각의 정사를 은유한다. 방아 가랑이를 매개로 삼아 혼자 찧고 둘이 찧고 하는 행위도 결국 성적 은유임이 분명해진다. 처용가에도 '가랑이가 넷인데 둘은 본디 내 것이건만 둘은 또한 누 구 것인가' 하지 않았던가.
물레야 방아야 애뱅뱅뱅 돌아라
이웃집에 귀동자 밤이슬을 맞친다
앞집에 큰애기가 시집을 가는데
뒷집에 총각이 목매달로를 가네
물레야 방아야 애뱅뱅뱅 돌아라
이웃집 귀공자 나부잠을 잔다
신안의 김부단 할머니 소리다. '애뱅뱅뱅'은 물레방아 굴대가 빨리 돌아갈 때 내는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이다. 따라서 애뱅뱅뱅 돌아라고 하는 것은 방아 찧는 일을 서둘러 끝내고자 재촉하는 소리이다. 일의 고달픔 때문이 아니라 이웃집 귀동자를 만나기 위함이다. 물레방아는 방아찧는 공간이면서 또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밀회의 공간이다. 물레방아는 물길이 있는 곳에 설치하므로 자연히 인가와 떨어져 있는 외딴 곳이면서도 살림집처럼 제법 아늑한 가옥 형태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남녀가 몰래 만나서 사랑을 나누기 안성맞춤이다. 앞집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뒷집 총각이 목매달러 가는 걸 보면 두 남녀가 물레방앗간에서 어떤 사랑을 했는지 짐작이 간다. 아무리 뜨거운 사랑을 나누어도 방해받지 않는 호젓한 공간이 바로 물레방앗간이다.*조작방아가 제일이다?
그러나 저녁 늦게까지 방아를 계속 가동하게 되면 밀회는 불가능하다. 방아를 다 찧을 때까지 기다리느라 이웃집 귀동자 밤이슬 맞고, 아니면 집에서 누워 있어도 나비잠을 잘 수밖에 없다. 이때 나비잠이란 나비가 꽃잎에 잠깐 머물러 잠들 듯 선잠을 자는 것을 말 한다. 그러므로 물레방아가 '애뱅뱅뱅' 요란하게 빨리 돌아가기를 축수하는 것이다.
얼씨구나 절씨구
이 방애 저 방애 다 버리고
너허고 나하고 찧는
조작방애가 제일이다
방아가 여러 가지이지만 역시 제일 좋은 방아는 남녀간의 조작방아란 말이다. 조작방아는 곧 사랑방아이다. 사랑도 조작이고 밀회도 조작이다. 그러고 보면 방아만 가지가지인 것이 아니라 조작도 가지가지이다. 의원 임대 조작에 이어서 안기부자금 수사조작, 국정조사 조작, 청문회 조작, 국회개회 조작 등이 그것이다.
안기부 자금 수사로 야당의원들을 요절 낼 것처럼 기세가 등등하던 검찰이 어느새 꼬리를 내리고 있다.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고 관련 의원들을 모두 소환 조사하여 국고환수까지 불사하겠다더니 실무자 몇 사람을 불구속 기소하는 차원에서 마무리지을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의원임대차 사건을 희석하기 위한 국면전환용 수사이거나 정치인 리스트 유출에 의한 야당 죽이기 조작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야당은 임시국회를 요구해 놓고서 정작 국회가 열리자 국회 밖으로 몰려다니고 있다. 이 또한 조작국회 아닌가. 안기부 자금이든 정치자금이든 어떻게 검찰이 조사조차 못하도록 방탄국회를 보란 듯이 열어 놓은 채 딴 짓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와중에 열린 한빛은행 부정대출사건 국정조사와 공적자금 청문회 등이 아무런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조작청문회와 조작국정조사가 판을 치니 정치도 겉돌고 나라 경제도 헛바퀴만 돈다. 물레방아도 굴대를 방아굴통에 연결시키지 않으면 아무리 돌고 돌아도 곡식 한 톨 찧을 수 없다. 그러나 헛바퀴가 돌든 말든 숨어서 딴 짓 하기에는 물레방앗간만큼 좋은 공간이 없다. 국회는 우리 시대 정상배들의 물레방앗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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