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시청 정면 광장에는 마상(馬上)에서 삼엄한 표정으로 정면을 노려보는 한 사내의 위풍당당한 동상이 서 있다. 크렘린 건립자인 공후(公候) 유리 돌고루키이다. 동상 앞에 서면 세계사의 한 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모스크바, 그 장중한 기운이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 온다.
대로변에서 고개를 약간 돌리고 코트 깃을 휘날리며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한 사람의 동상은 유달리 눈길을 잡는다. 인도의 수상을 지낸 네루가 딸 인디라 간디에게 보낸 편지(세계사 편력)에서 정중하고도 애정어린 문장으로 소개했던 바로 그 사람 '거인' 레닌의 동상이다. 동상은 새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설계하는 자의 영혼의 웅장함과 고독을 동시에 반영하는 듯하다.또 다른 길 위에는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의 동상이 서 있다. 그는 금방이라도 몸을 부르르 떨면서 저 우주로 날아갈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모스크바의 동상들은 새로운 도시.새로운 세상.세상밖의 또 다른 세상을 꿈꾸었던 한 도시의 정신적 육체적 이력의 상징물로서 기어코 우뚝하다.동상들에게 경배를! 동상들은 차치하고라도 모스크바에는 관광명소들이 숱하다. 모스크바 시 관광국 관계자들이 특별히 지목하는 명소만 해도 한참을 헤아려야 할 지경이다. 크렘린궁.붉은광장.바실리 사원.볼쇼이 극장.레닌도서관.아르바트 거리….
여행객의 일정이 제 아무리 빠듯하다 하더라도.이 가운데서 크렘린과 붉은광장 바실리사원만은 반드시 보아야 한다. 모스크바는 물론 전 러시아의 상징물들이기 때문이다.크렘린은 러시아어로 모스크바 강변의 높은 지대를 둘러싼 '성벽'을 뜻한다. 성벽의 길이는 2천235m, 폭은 3.5~5m, 높이는 5~19m다. 성벽 위에는 총구와 20개의 망루가 있다.
자료에 따르면 크렘린의 역사는 1156년에 유리 돌고루키가 한적한 농촌에 불과했던 모스크바의 볼로비츠키 언덕 위에 목조 성채를 쌓으면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로 쓰이고 있다.눈을 밟으며 성벽을 따라 걷다가 자작나무 숲에 이르러 공무용 출입구로 쓰이는 스파스카야탑을 올려다 보니 탑 꼭대기에 지름 1m에 달하는 큼지막한 별 장식물이 걸려 있는 게 보인다. 겨울 모스크바의 어둑어둑한 하늘 한 가운데에 붙박혀 있는 저 별은 문득 동화적 향수를 자극한다.
별을 우러르다가 자작나무에 손을 문질러 보면 횟가루처럼 약간 끈적거리는 허연 가루가 묻어나고 돌출된 껍질을 옆으로 당기면 그 껍질은 종잇장처럼 찢긴다. 껍질은 손바닥 안에서 바스락거린다. 겨울의 모스크바는 동화풍의 도시이다. 크렘린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면 크라스나야 플로시차지, 붉은 광장이다. 러시아 고어에서 크라스나야, 즉 '붉다'라는 형용사는 '아름답다' '훌륭하다'라는 형용사와 동의어이므로 '붉은 광장'은 그러니까 '아름다운 광장'이란 뜻이다. 요컨대 여기에서 '붉다'라는 형용사는 사회주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단어이다.
아름다운 광장의 규모는 넓이 7만3천㎡, 길이 695m, 평균 너비 130m이다. 크렘린과 러시아 최대 백화점인 굼.국립역사박물관.바실리 사원이 사면에 배치되어 있다.광장에서 크렘린을 마주보고 서면 정면에 암적색의 화감암으로 조성된 자그마한 피라미드가 보인다. 레닌의 묘다. 모스크바 군관구는 이 묘역을 제 1번초소로 지정해 위병들을 배치했다. 관람객은 가방이나 카메라를 소지해서도 안되고 소리를 내지 못하며 멈춰 서서도 안된다.
광장의 벽돌 바닥을 남쪽으로 밟아 나가면 광장의 끝자락에 모스크바의 상징 구실을 하는 바실리 사원이 서 있다. 바실리 사원은 높낮이와 모양이 조금씩 다른 양파 모양의 지붕 9개가 숲 속의 나무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태의 건축물로서 건축사가들로부터는 16세기 러시아의 '집중식 성당건축의 결정체'란 평가를 받고 있다.
17세기 중엽 칸 왕국을 합병시킨 이반4세는 봉헌물로써 이 사원 신축을 지시했는데 완성된 건물을 보고 지나치게 감동한 나머지 다시는 이런 건물을 설계할 수 없도록 건축가 보스토니크와 바르나의 눈을 뽑아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모스크바 관광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황금의 고리'로 불리는 근교 소도시 관광으로 한정돼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시 당국에서는 러시아횡단철도(TSR)를 이용하는 관광상품을 연구.개발중이다. 시 해외홍보위원회 수석 고문 올가 A 플레카노바씨는 "남북한 종단철도(TKR)와 TSR이 연결되면 관광객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시에서는 모스크바와 시베리아의 각 도시를 연결하는 새 관광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전한다.모스크바에서 일정을 마친 취재팀은 야로슬라프스키역으로 향한다. 모스크바에는 야로슬라프스키역을 비롯해 벨라루스키(백러시아) 카잔 키예프 쿠르스키 상트페테르부르그(레닌그라드) 파벨레츠키 샤볼로프스키 리가 등 9개의 역이 있는데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9천288.2㎞를 달리는 TSR열차의 출발지는 야로슬라프스키역이다.
베이징과 평양까지 가는 국제열차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오후 8시50분. 취재팀은 열차의 자리(쿠페.4인실)를 확인한 뒤 복도로 나가 바깥을 내다 본다. 시베리아 횡단이 시작되고 있다.파에하리!(출발!).
이광우기자 leekw@pusanilbo.com
사진.강원태기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