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문화관광부가 정한 '지역문화의 해'다. 지방 문화.예술인들의 기대가 크지만, 벌써부터 비관적인 전망과 비판의 소리마저 없지 않아 과연 어떤 성과와 연결될 수 있을는지 우려된다.
웬만한 기초자치단체들도 이젠 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한 문화공간을 갖고 있다.미술관.박물관도 차츰 늘어나는 추세다.
봄.가을에는 각종 문화.예술축제들이 붐을 이룰 것으로도 예상된다.
그러나 그 안켠을 들여다보면 외화내빈의 소지는 여전하다.
문화에 대한 욕구와 인식이 과거에 비해 향상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폭넓은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겉모습이 그럴듯한 공연장들마저 가동률이 50%에 못미치고, 결혼식.집회 등을 빼버리면 30% 선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으로 점쳐지기도 한다.
더구나 대부분의 축제들은 엇비슷해 정체성과 특화가 요구되는 형편이며,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거나 공동체 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게다가 올해의 정책 자체도 중앙집중적인 구태에서 별 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상황이다.
과거 회귀적인 문화 투자도 지나쳐 버릴 수 없는 문제다.
문화축제들이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되살리는 것은 좋은 일이나 단순히 과거사의 재현이나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는 데 머문다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문화명소 만들기 활성화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지역 문화의 정체성이 애매하고,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는 데 있다.
언제부터인지 '지역'은 '주변'과 유사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져 모든 것의 중심은 서울이며 그 변두리가 지역이라는 인식이 굳어져 왔지만, 이는 반드시 극복돼야 할 과제다.
올해는 지역 문화가 변두리 문화라는 개념이 아니라는 인식의 바탕 위에서 진정한 의미의 정체성과 새로운 전기를 일으켜 세워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일찍부터 빼어난 문인을 많이 배출한 대구.경북지역에서 문학의 정체성 찾기와 문인 생가의 명소화 움직임 등이 두드러지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안동에서는 시인 이육사를 기리는 '육사 기념관', 경주에서는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박목월을 기리는 '동리.목월 기념관', 영양에선 소설가 이문열씨의 생가가 있는 석보면 원리리에 '여산(廬山)문학연구소'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안동시가 육사의 고향인 도산면 원천리 2천여평에 20억원을 들여 2004년 7월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완공 예정인 '육사 기념관'은 생가를 복원하고 300평 규모의 전시실.교육관.자료실 등을 갖추게 되며, 지난 1월 16일 발기 총회(추진위원장 이어령)를 가졌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동리.목월 기념관' 건립준비위(위원장 장윤익)는 2월 3일 발기 총회를 열고, 2년간 기금 30억원의 모금할 움직임이다. 하지만 동리의 생가터(성건동)는 소유주가 매각을 꺼리고, 목월의 생가도 너무 외진 곳(건천읍 모량리)이어서 경주의 적절한 부지 3천400평에 문화공간과 관련 자료전시실 등을 갖춘 통합기념관을 짓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모양이다.
영양 두들마을의 '여산문학연구소'도 영양군이 이문열씨의 협조로 2년 전부터 사업을 추진, 8억8천700만원을 들여 대지 700평에 건평 158평 규모로 학사.강당.관리사 등을 갖춘 목조한옥을 오는 4월까지 준공할 예정이다.
##생색내기에 그쳐선 안돼
이들 사업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경북 북부지역의 경우 안동의 육사 시비와 기념관, 영양의 오일도 생가와 시비, 조지훈의 생가와 시비, 이문열씨의 생가와 문학연구소 등은 하나의 벨트를 형성, 유교문화권과 함께 각광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동리.목월 기념관'도 불교문화의 보고인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의 새로운 문학 요람과 관광 명소로 부상할 가능성를 엿보이게 한다.
이들 사업과는 대조적으로 3년 전부터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시인 이상화의 기념관 건립을 계획해온 대구시의 이 분야 사업은 여전히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고월 이장희에 관련한 사업은 여태 캄캄해 차치하고라도, 상화의 고택(계산2가)과 인근 땅을 사들여 원형대로 단장한 뒤 '상화 기념관'으로 보존하면서 시비(달성공원).동상(두류공원).묘역(화원)을 벨트화하려는 대구시의 구상은 이 고택 매입 문제를 두고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문인 기념관 건립이 관광객 유치나 생색내기에 급급한 왜곡.졸속으로 치닫지 않고, 그 정신을 기리고 본받는 새 명소 만들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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