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창가에서-신용카드와 판공비

그 칼국수집은 좁은 골목길에 있는데다 주차장도 없고 옆에 큰 공사장이 있어 식당으로서는 도무지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낮 12시쯤 도착한 우리 일행이 미닫이를 열고 들어서자 좁은 식당안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다른 사람이 식사하고 있는 좁은 통로에서 서서 10여분을 기다린 끝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칼국수 한그릇을 비우고서야 왜 그 좁아터진 식당을 공사장 인부들도, 구청 공무원들도, 대학 교수들도 즐겨 찾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3천원짜리에 친절한 서비스까지 스며있는 맛있는 국수는 점심 한 끼로는 제격이었다.

직장인들은 점심때면 고민한다. 메뉴와 가격, 서비스가 맞아 떨어지는, 적당한 거리에 있는 식당을 찾기란 수월치 않기 때문이다. 날마다 먹어야 하는 점심 아닌가IMF이후 달라진 것의 하나가 외식문화 풍속도이다. 하긴 거창하게 외식문화라 이름할 것도 없지만 식당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진 것이다. 일부 깨끗하고 괜찮은 음식점은 값이 다소 비싸더라도 손님들로 넘쳐나지만 대부분의 고급식당들은 줄어든 손님들로 울상이다. 이런 식당들의 '계꾼을 잡아라'는 슬로건이 웃지못할 현실이라고 한 식당 주인이 털어놓는다. 곗돈은 소위 '네 돈도 내 돈도 아닌 공금'이기 때문이란다. 내 돈으로 점심을 먹으려면 기껏해야 칼국수나 된장찌개 정도이고 아니면 돼지고기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정도지만 '공금'으로 먹을때면 갈비집이나 횟집을 찾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늘어나는 신용카드 사용

지난 2000년 한해 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이 쓴 신용카드 매출실적은 물경 214조3천여억원. 99년의 91조1천억원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이때문에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만도 2조원 이상을 더 걷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국세청은 추산했다.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난 것은 과표 노출을 위해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해 일정부분 연말정산시 소득공제 해주는 제도를 시행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소득공제후 더욱 활성화

이런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난 데는 공직자들의 판공비를 신용카드로 사용토록 제한한 것도 아주 작은 기여를 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고위공직자들에게는 업무추진비라는 이름의 판공비가 있다. 마치 기업체가 접대비나 영업비를 쓰듯 공·사조직을 막론하고 조직의 업무를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 특정한 직무를 맡고 있는 사람에게 업무 추진을 위한 비용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용을 특정 지위에 있는 사람이 마치 개인의 사비처럼 사용하는 바람에 사회적으로 자주 물의를 빚기도 한다. 그래서 이 비용의 사용을 투명하게 한다며 신용카드로 결제토록 하면서 현금 사용을 전체 비용의 일정비율로 제한한 것이다. 덕분에 관공서나 공공기관 주변에서는 신용카드 결제가 되지 않으면 아예 식당 영업을 못 할 지경이 돼 버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심하게 얘기하면 온통 먹자판이란 이야기다. 내 지갑으로 계산할때는 삼겹살이면 충분하지만 공돈이니 요리집이나 고급 음식점에서 푸짐하게 먹자는 생각들이 사는 사람에게나 얻어먹는 사람에게나 만연해 있는 것이다.

투명한 사회 만드는 지름길

공돈을 더 줄여갈 수는 없을까. 특히 관공서나 기업체의 업무추진비나 접대비 등은 최소한의 기본경비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직원들의 임금에 포함시킨다면 공무원 처우개선이나 사원 임금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혜택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런다면 고급 요리집보다 칼국수집들이 더 많이 번창하고 더 많은 가장들의 귀가시간이 앞당겨지지 않을까. "선진국 사람들은 호주머니에 동전만 갖고 다닌다. 모든 계산은 신용카드로 하기 때문에 현금이 필요하지 않고 또 서로의 사정을 뻔히 알기 때문에 더치페이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밥 먹는 것, 물건 사는 것, 용역비 지불하는 것 등 모두를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는 없을까. 그러면 더 재미없는 세상이 될까? 대다수 월급쟁이들의 지갑이 서로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유리지갑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신용카드 사용이 확대되고 있는 이유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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