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겨울방학의 마지막 날

초등학교 겨울 방학이 1월말로 끝났다. 개학 며칠 전부터 남은 날이 아까워 달력을 들춰보던 큰딸애도 개학을 하루 앞둔 날 저녁, 어쩔 수 없는 모양인지 방학과제물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요즈음은 아이들이 문제인지 부모가 문제인지 학교 방학 숙제를 부모가 함께 씨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대로 혼자 잘 꾸려온 것이 대견스럽다. 이제 다 키웠다는 게 애 엄마의 혼잣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혼자 숙제했다는 게 별 것은 아니다. 당연히 해야될 일을 한 것일 뿐. 엉뚱하게도 숙제 안하고 버티는 강단은 없을까도 상상해본다. 물론 딸애를 불량소녀로 키울 생각은 아니다.

어릴 적 일이다. 형제가 방학 마지막 날 저녁, 줄줄이 방에 엎드려 필사적으로 방학숙제를 하던 기억이 난다. 형들이 있었지만 나를 도와 주기는 커녕 자기들 코도 석자였다. 이윽고 작은 형이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나는 형이 '매로 때우겠다'고 비장하게 결심했음을 직감했다.

물론 방학 숙제를 몰아서 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일기 쓰기만은 도저히 불가능했던 것이다. 나도 그랬지만 놀기에 바빠 까맣게 튼 손등, 그것도 드문드문 터져 나온 피가 굳어있는, 땟국물이 흐르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던 형은 결국 그 다음 날 매로 때웠고 나는 형 친구에게서 그 사실을 확인했었다.

모친은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하곤 하신다. 형은 물론 이후부터는 그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형이 지금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는 처지에 있는 것은 아마도 숙제 못해갔던 그 기억의 도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방학에 딸애가 숙제를 혼자 힘으로 다했다는 게 좋은 일이긴 하다. 그러나,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경험도 해보아야 다 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딸애에게 더 잘하라고 큰아버지의 이런 경험을 이야기해주며 함께 웃었다.

대구대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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