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정월 대보름의 달맞이 노래
설을 엊그제 쇤 것 같은데 벌써 대보름이 코앞에 닥쳤다. 보름달은 자신의 속마음을 비추어 보는 거울인가 하면 상상 속의 그림을 그리는 화선지이기도 하다. 인도인들은 달 속에 커다란 집게발을 가진 '게'를 그리고, 서구인들은 달 속에 금발미녀의 옆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우리는 달에다 계수나무를 그린다. 이를 그리는 '달 노래'는 곧 한 폭의 풍속화가 된다.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가 백혔으니
옥도끼로 찍어내서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에 집을 짓구
양친부모를 모셔다가
천년만년을 살구지구
가장 상투적인 달노래로서, 달 속에다 계수나무를 그리고는 초가까지 짓는다. 유럽인들이 금발의 여인을 이상적인 연인으로 그린다면, 우리는 계수나무로 초가삼간을 지어 양친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을 이상으로 그린 셈이다. 얼마나 소박한 꿈인가.
임은 어이 못 오시나
소박한 꿈이라고 하여 쉽사리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부모가 다 생존해야 할 뿐 아니라, 자녀들도 배필을 만나 부부를 이루어야 가능한 일이다. 혼자 살면서 양친부모를 잘 모실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임 그리워 못하겠네" 하고 한탄조로 마무리된다. 양친부모를 섬기려해도 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다른 노래에서는 "이붓에미 에밀런가/ 이붓애비 애빌런가" 하며, 친부모가 아닌 까닭에 이 꿈의 불가능성을 안타깝게 드러낸다.
누운 애기 젖 달라네
앉은 애기 밥 달라네
걷는 애기 신 달라네
부모형제가 구존하되 꿈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갓난아기는 젖 달라고 울고, 서너 살 먹은 아이는 밥 달라고 보채며, 대여섯 살짜리 철부지는 신 사 달라고 조르니 양친부모를 제대로 섬길 겨를이 없다. 양친부모 잘 섬기겠다는 꿈도 자녀들을 낳아 기르기 전의 꿈일 뿐, 자녀들이 하나 둘 나서 성장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부모들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이다.
이 노래에는 부모님을 받들고 사는 관념적인 소망과 자식을 기르며 사는 살림살이의 현실이 어긋지게 그려져서 역동성을 지닌다. 이러한 대립적 양상은 부모를 섬기는 어미와 아기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님 사이에도 있다. 달아달아 둥긋헌 달아
임에 동창에 변친 달아
간밤에 꿈같은
임에게서 편지 왔네
편지사 왔건마는
임은 어이 못 오시나
동자야 먹 갈어라
임에게로 답장하자
예천의 임오분 할머니 소리이다. 님의 동창에 비친 달은 보름달이자 둥긋한 달이다. 초승달은 서창에 비치다가 곧 져버리지만 보름달은 초저녁에 동창을 밝히다가 남창을 거쳐 서창까지 밤이 이슥하도록 어둠을 밝힌다.
날 찾을 줄 모르는고
보름달을 매개로 나와 님은 서로 만날 수 있되, 그것은 불완전한 만남이다. 서로 오고갈 수 없는 처지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할 뿐이다. 달은 꿈이나 편지와 같은 매개물 구실에 머문다. 달을 보고 님에게 답장을 쓰는 여인은 그래도 행복하다. 아예 소식조차 끊어진 사람은 "슬프다 우리임은"하고 노래할 수밖에 없다.
정월이라 보름날에
아어른 해동 없이
양반의 사연 없이
그 달 망월 야단이다
슬프다 우리임은
망월할 줄 모르고
기 어디로 이별 갔노
이수일 어른의 '달풀이'소리이다. 정월 대보름날 아이 어른, 양반 상민 가림 없이 달맞이를 하느라 야단이다. 보름달을 가장 먼저 보는 사람에게 행운이 올 뿐 아니라, 달을 향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다투어 높은 곳으로 올라가 달맞이를 한다. 달집태우기나 쥐불놀이를 하면서 대보름 전야를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님'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달 노래는 보름달을 대상으로 한 노래이면서 또한 일년 열두 달을 대상으로 한 노래이기도 하다. 열두 달 노래를 특히 '달풀이'라고 한다. 숫자뒤풀이나 한글뒤풀이처럼 달을 소재로 풀어나간 노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정월에서 섣달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월에는 이월 영등을 소재로 하여 노래한 뒤에 "슬프다 우리임은/ 영등할 줄 모르고/ 기 어디로 이별 갔노" 하며 매듭을 짓는다. 이처럼 달마다 그 달의 중요한 풍속에 따라 노래를 하고 후렴구의 공식에다 해당 풍속의 내용을 바꾸어 넣는다. 3월의 경우는 "삼월이라 삼짇날에/ 강남서 나온 제비/ 옛주인 다시 찾아/ 구구히 인사한데/ 슬프다 우리임은/ 인사 아직 못 하시고/ 기 어디로 이별 갔노" 하는 것이다.
2월 영등 3월 삼짇날에 이어 4월은 초파일이고 5월은 단오이다. 초파일에는 각종 등을 달고 단오에는 그네뛰기를 한다. 초파일날 절에 가다가 산의 늙은 소나무나 묘지의 망두석이 마주 선 것을 보고 "슬프다 우리임은/ 마주 설 줄 모르시고" 하며 눈물짓고, 단오날 청춘남녀들이 더불어 그네 뛰는 모습을 보고 "슬프다 우리임은/ 희롱할 줄 모르시고"하며 눈물짓는다.
칠월 가머 칠석날이
견우직녀도 상봉한데
우리야 임은 어딜 가고야
날 찾일 줄 모르덩고
경주 김근이 할머니의 달풀이 소리이다. 유월에는 사랑하는 임이 유두날 신선처럼 장기 바둑을 즐기며 놀기를 기대하고, 칠월 칠석에는 견우직녀가 만나듯이 자기를 찾아와서 상봉하기를 기대한다. 달풀이의 소망은 달맞이 소망이나 다름없지만 정월 대보름 하루만 빌고 만족할 수 없다. 다달이 빌고 또 비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시월달에 비는 액은
시월상강으로 막어내고
동짓달에 비는 액은
동지팥죽으로 막어내고
섣달에 비는 액은
서까래로 막어내고
김채용 아주머니 소리다. 달풀이가 마치 액막이 노래처럼 주술적 형식을 취했다. 다달이 드는 액을 세시풍속을 통해 막아내다가 마침내 섣달에는 마땅한 풍속이 없으니 서까래로 막아낸다고 한다. 왜 하필 서까래인가. 시월달은 시월상강, 동짓달은 동지팥죽으로 운이 맞다. 유월유두, 칠월칠석처럼 섣달에는 운을 맞출 수 있는 절일이 없으니 섣달과 운이 맞는 서까래를 동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요는 내용상의 일관성과 형식상의 통일성을 지키되 이것을 지키는 데 문제가 생길 때는 적어도 형식과 내용 가운데 어느 한쪽은 꼭 지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보름달인가
그런데 정치인들은 어느 한쪽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그들도 정치인이기 전에 인간이므로 사람 노릇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러자면 양친부모를 모시고 살지는 못하더라도 설날만은 세배도 올리고 차례도 지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들은 조상 차례도 제쳐놓고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 다투어 참석했다. 초대받지 않은 잔치에 구걸하다시피 끼여드는 것도 문제려니와, 외교성과 뻥튀기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더욱 문제다. 사람 노릇도 정치인 구실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부시는 우리 정치인들의 소망을 들어주는 보름달일까. 내가 보기에는 미국의 국익에 매몰되어 있는 한갓 보수주의자일 뿐이다. 그런데 왜 다투어 찾아가서 공 다툼을 하며 소원성취라도 한 듯이 티격태격 할까.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안 샐까마는, 미국까지 가서 권력의 해바라기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 같아 민망스럽다. 둥긋한 보름달이 말갛게 내려다보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