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쟁에 지고도 국익 챙기는 '협상력'

근대 유럽의 형성기, 프랑스는 뛰어난 외교관들로 인해 국력을 다질 수 있었다. 루이 13세의 재상이자 외교관인 리슐리외는 프랑스의 절대왕정 확립에 기여하면서 30년 전쟁을 교묘하게 배후 조종, 프랑스에 유리하게 이끌었다. 리슐리외의 후임 마자랭은 루이 14세때 베스트팔렌조약을 성사시키고 에스파냐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뒤이어 등장한 프랑수아 드 칼리에르는 아우크스부르크 동맹전쟁후 리스비크 조약을 맺음으로써 전쟁에선 졌으나 국익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참모들의 역할로 루이14세는 '태양왕'으로 불리며 절정에 오른 힘을 과시하게 된다. 칼리에르는 죽기 1년전 루이 15세의 섭정에게 자신의 외교 노하우가 담긴 책을 헌정한다. 그가 쓴 '어느 원로대신의 협상에 관한 충고'(남경태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150쪽, 9천원)는 외교와 협상에 관한 지혜를 응축한 것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비견되기도 한다.

300년 전 프랑스 민족과 국왕을 위한 외교와 협상술이 오늘날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것은 보편적 원리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 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 및 활동 등의 경제분야, 갈등과 충돌이 존재하는 다양한 협상에서 그의 '노하우'는 충분히 활용될 만한 가치가 있다.

좋은 협상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협상가의 자질. 통찰력, 순발력, 융통성, 폭넓은 이해력과 지식, 예리하고 올바른 분별력, 좋은 인상과 함께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올바른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쓸 데 없이 비밀스런 태도는 하찮은 것을 대단한 것처럼 둔갑시켜 협상자의 소심함이나 무능함을 보여주게 되며 신중한 기품을 지닌 사람은 괜한 논쟁에 열을 올리다 비밀을 누설할 위험을 없애고 허세를 부리지 않음으로써 신뢰와 존경을 얻게 된다.

협상은 반드시 도덕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소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권모술수도 때로 필요할 때가 있다. 국가들 간의 증오심을 조장하는 선동, 서로 질시하는 경쟁자들을 싸우도록 부추겨서 제3자가 어부지리를 얻는 행위의 효과를 고려하거나 돈의 동원, 권력 측근의 여성들과 친하게 지내기, 첩보활동의 중요성 등을 간과하지 말아야 된다.

17세기 유럽에서 고도로 발달되었던 외교의 격식은 오늘날 서구 사회에도 남아있어 그들의 협상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간결하면서도 풍자가 깃들어 책읽는 재미도 적지 않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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