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이후 처음'이라는 지난달 17일부터의 미국 캘리포니아 전력 비상사태(본지 1월18일자 12면 보도)가 오늘까지도 연장되고 있다. 무려 21일째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현지에서는 엘리베이터가 멈춰 사람이 갇히기도 하고, 주유소에서는 기름을 넣지 못하며, 교통 신호등이 작동을 멈추기도 했다. 국가 단위와 비교해서도 세계 경제규모 9위에 해당한다는 캘리포니아 주가 단전이라는 원시적인 인재로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상황은 왜 생겼을까? '한국전력'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우리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대목이다.
이번 사태는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소비자 이익을 확대한다며 전력시장을 민영화 하면서 촉발됐다. 전기 독점공급 체제를 자유경쟁 체제로 전환한다며 1996년에 대대적인 전력시장 민영화 정책을 도입했던 것. 독점을 철폐하면 다른 주의 전력회사들이 캘리포니아로 건너와 자유로운 경쟁이 발생, 전기 값이 자연스레 인하되리라 생각했다. 당시 이 지역 전기 가격은 미국에서 가장 높았다.
그러나 주정부의 계획은 완전하지 못했고, 예상은 빗나갔다. 기존 전력회사들은 주정부 권유에 따라 대부분의 발전소.발전설비 등을 다른 지역 민간 전기회사들에게 팔고, 대신 전기를 사들여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게 파는 중간 공급자로 변신했다.
그후 전력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하지만 전력 설비 신설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주정부가 실리콘 밸리 심장부인 산 호세에 발전소를 세우려고 시도하긴 했으나 시스코 시스템스가 반대하는 등 지역 이기주의가 심했던 것도 한 요인이었다. 그 탓에 캘리포니아는 주 전기 소비량의 약 25%를 다른 지역으로부터 사들이게 됐고, 덩달아 일년 전 kWH 당 5센트이던 전기 도매가격은 지금 40센트로 폭등했다.
그런데도 캘리포니아의 2대 전기 소매회사인 PG&E(태평양 가스전기)와 SCE(에디슨)는 전기 소매가 조차 올릴 수 없었다. 1996년 전기 시장 자율화 때의 소매가 동결조치 때문이었다. 900%나 치솟은 도매가를 소매가에 반영할 수 없게 된 뒤 이 회사들은 120억 달러의 부채를 안게 됐으며, 현금부족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까지 선언한 상태이다.
결과적으로 캘리포니아 3천400만 주민들만 피해를 당하게 된 셈이다. 독자적으로 전기를 생산.공급하고 있는 LA시까지 단전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시내 가로등의 전구를 기존 250W에서 150W로 교체하는 등 절전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사태가 악화된 뒤 부시의 연방정부까지 가세하고 주정부가 나섰으나, 아직은 완벽한 대책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정부는 전기 구입과 전기회사 부도 방지를 위한 최대 100억 달러의 공채를 발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고, 결국은 전력 요금을 완전 자율화하는 방안도 얘기되고 있다. 국가 기간 시설까지 완전 민영화 하는 것이 과연 지당한 일인지 되돌아 보게 하는 한 사례로 주목되고 있다.
모현철기자 mohc@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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