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어느 산골. 두 나무꾼이 산을 오르며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허참, 공자가 맹자 아버지라니까 -" "누가 그래, 맹자가 공자의 부친이란 말이야 -" "아니 이 사람아, 어떻게 맹자가 공자를 낳았다 그래.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하는 얘기도 못 들어봤나, 당연히 공자가 아버지고 맹자가 아들일세 -" "예끼, 무식한 놈아, 맹모삼천도 모르나 -" "뭐 무식?, 에라 이 돌대가리야 -". 서로 핏대를 세우던 두 나무꾼은 급기야 멱살잡이 끝에 '마을 사람들한테 물어 보자'며 지게를 벗어 던졌다.
그래서, 조용하던 마을은 덩달아 '두 나무꾼의 논쟁'에 휩쓸렸고, 그 역시 패가 갈려 결론이 나지않자 '투표로 결정짓자'고 입을 모았다. 그리하여 마을사람들은 '맹자가 아버지, 공자가 아들'이라는 '표결 결과'에 승복을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이름하여 '맹꽁주의'라는 우화다. 단지 다수의 의견이라는 명목 하나로, 공자가 자신의 손자의 문하생인 맹자의 아들로 둔갑하는 어이없는 일이 그 마을에서 통했다는 줄거리다.
◈패거리 지상주의
이 우화는 우리사회가 신봉하는 다수결에 대한 신랄한 야유와 조소가 담겨 있다. 효율성을 내세워 도나 개나 투표로 결정짓는, 얼토당토않은 주제나 빗나간 전제(前提)를 설정해 놓고 '수적 우세'를 유도해 대표성 운운하는, 다수(머저리티) 지상주의에 대한 고발이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그런 맹꽁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그 대표적 하나가 무수히 쏟아지고 있는 여론조사, 설문조사다. 보통 어설픈 문·답을 제시하는 게 대부분이다. 거기에는 합리적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문화가 끼여들 여지도 없다. 오로지 선다식 요구이거나 예스냐 노냐다. 그 조사결과는 제멋대로 해석을 거쳐 몇 %의 찬성 또는 반대, 아니면 그럴듯한 여론으로 포장해 한 사회와 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드는 것이다.
엊그제 한 공중파 방송이 내보낸 설문조사도 가관이다. 얼마전 고려대가 외국인학교 학력을 인정안해 여성 3인조가수 SES 유진 양의 합격을 취소한 것에 대해 찬반의견을 묻고 그 결과를 요란하게 내보냈다. 아무리 연예프로그램이라지만 그런 것도 찬반으로 따져 볼 일인지, 그걸 여론이라고 방송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도무지 혼란스럽다.
◈정치권의 '의원 꿔주기'결정판
요즘 사사건건 등장하는 이른바 네티즌 여론이라는 것도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인터넷 시대, 폭발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수많은 PC통신의 게시판.토론실, 기관.단체.개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정말 어지럽기 짝이 없다. 자신의 주장을 악찬 논리와 세련미 넘치는 표현으로 펼친 글은 찾기가 쉽지 않고, 전투적이고 자극적인 제목, 욕설을 넘나드는 표현과 내용, 타인에 대한 명예훼손, 억지 주장이 넘쳐나고 있다.
대체로 이런 글일수록 '접속' 에 불이 붙는다. 표현의 자유도 좋고 동시적 의견집약이라는 인터넷의 순기능은 마땅히 평가해야할 것이지만 무턱대고 '접속 건수'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무게를 두는 따위의 네티즌 의견 운운은, 자칫 맹꽁주의에 빠질 위험이 많다.
◈진실없는 억지주장 자제해야
맹꽁주의의 결정판은 언제나 정치권이다. 멀리갈 것도 없이 연초부터 온 국민을 떡심 풀리게 한 '의원꿔주기' 파동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 정치사상 희대의 코미디로 불러도 좋을 이 파동은, 그것을 '광의의 정의'라고 우기든, 개혁 추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둘러대든,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복원이든, 국민의 눈에 분명히 비친 것은 후진적 '숫자 정치'의 집착이다. 현정권 출범초 야당의원 30여명이 무슨 영문때문인지 우르르 당적을 바꾼 것도 마찬가지다. 그 많은 소속의원을 갖고 '큰 정치'를 놓친 한나라당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그 모두 정치를 '패거리 우세'로 끝장내려는 어리석음 때문일 것이다.
현자(賢者)가 그리운 세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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