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하얗게 얼어붙은 날, 왜 갑자기 그 곳에 가야한다고 생각했을까. 우매리에서 반야사까지 겨우 300여m. 그 길이 주는 여운은 몹시 길었다. 작은 길 하나가 산들에 비잉 둘러싸여, 알 수 없는 세계 속에 갇혀버린 것처럼 사방을 휘둘러도 바깥세상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밖을 캄캄하게 몽땅 잊어버린 듯 고요히 존재하는 길 하나. 오목하게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전혀 갇혀있다는 느낌 없이 오히려 바다 마냥 가슴이 온통 열려버리는 신비로운 길.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 때문인가. 물살에 굴러 내리는 돌들 때문인가.
물소리도 자갈 구르는 소리도 다 얼어버린 날, 물가에 망연히 서 있다가 맹수 울부짖음을 듣고 말았다. 쿠르르르릉! 어디서부턴가 울려 퍼지는 맹수 소리! 산들을 들썩이다 마침내 내가 발 딛고 선 길을 울컥, 울린다.
흠칫 놀라 발을 주춤거릴 때 또 다시 들려오는 소리. 갈기를 흔들며 달려드는 숫사자나, 위험을 맞닥뜨린 호랑이에게서나 나올 법한 소리. 기나긴 침묵을 한꺼번에 깨뜨리는 엄청난 비명을 들으며 사방에 둘러쳐진 산등성을 돌아보았다. 산줄기 어딘가에 숨어 포효하고 있을 맹수 떼를 찾기 위해.
그러다 그것이 계속되는 눈, 바람에 두텁게 얼어붙은 얼음이, 내가 선 길보다 더 큰 얼음 덩어리가 동째 움직이는 소리란 걸 알았을 때도, 난 내 눈앞에 떡 버티고 선 사자 한 무리를 털어내지 못했다. 쩌엉, 울리는 것도 아니고 우르릉대니. 얼음 저 아래 한 떼의 사자가 갇혀 아우성치고 있는 듯 오래도록 그 주변을 서성여야 했다.
시인들이 즐겨 노래하는 반야사게 갔다가 내려오는 길 내내 귓가를 떠나지 않는 맹수 울음소리는 급기야 나를 소름에 젖게 하고, 내 속으로 깊게 밀려들었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에 갇혀 발버둥 치는 울부짖음. 무얼 내뱉지 못해 안달하는 걸까. 내 비명과 닮은 것. 나도 산이 온통 뒤흔들려도 좋으니 소리나 질러볼까. 내 껍질 속에 갇혀 숨쉬지 못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비명을 질러 찾아내 보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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