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겨울이 봄과 함께 온다니말도 안되는 소리

무서리도 겨우 어제 그제 일인데

하마 내미는 개나리의 눈이 민망하다.

봄은 봄, 겨울은 겨울

사람도 꽃도 다 분수가 있어야지

그 정도의 염치는 있어야지

아닐바엔 영 피지도 말 일.

겨울이여, 가혹히 오라

다들 죽어 든 시늉을 할 때

죽어서 영하 깊이 잠든 시늉을 할 때.

-신동집 '분수'

입춘 지났다. 이른 꽃나무들은 벌써 자신의 몸을 살찌워 꽃 피울 채비에 분주하다. 그러나 노시인은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일갈한다. 분수를 지키라고!

노신(魯迅)은 물에 빠진 개는 두둘겨 패라고 말했다. 이는 매사를 철저히 하자는 말이다. 세상 어느 하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서 꽃이라고 분수를 알까. 이런 날은 나도 자신을 가혹하게 두둘겨 패고 싶다.

김용락〈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