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강해림-시인)

이 지구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도 다양성의 마력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붙들어놓는 나라가 있다면 바로 인도가 아닐까? 수많은 성자와 탁발승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아 떠나는 곳, 인도. 나 역시 내 안의 '무수한 나'를 훌훌 벗어던지기 위해 그곳으로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1월 난생 처음 배낭족이 되어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은 '인간성 밖의 백성'이었다. 원색의 사리속에 감춰진 그들의 삶은 상상을 초월했으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애써 공부하고 익힌 것들을 일순간에 무화(無化)시키고 뒤범벅이 되게 만드는 모순의 나라였다.

좁은 골목길에까지 방목한 소와 염소 같은 동물들이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동물들의 배설물과 함부로 버려놓은 온갖 쓰레기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걸어다녔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인도인의 몸속엔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는 듯 느껴졌다. 그들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작은 감옥'인 신발과 문명에 길들여짐을 거부하고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어딜 가나 구걸행각을 벌이는 걸인들과 피란민 같은 사람들로 득실거렸다, 나는 잿빛도시 델리에서 내내 우울했으며 내눈에 그들의 삶은 끔찍해 보였다.

릭샤를 타면 비로소 인도가 보인다고 했던가? 어느새 나는 앙상한 맨발의 릭샤꾼이 모는 사이클 릭샤를 타고 거리를 누비는 동안 즐거웠으며, 그들이 건네는 한 잔의 짜이가 달콤했다. 그리고 그들의 위대한 예술혼들이 빚고 세워놓은 무수한 건축물과 사원들 앞에서 천년 전, 지상에서 가장 부유하고도 화려했던 왕국을 꽃피웠음을 실감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많은 유적지들이 남아 있었고, 고대와 신생이 얼기설기 엉킨 채 살아 숨쉬는듯한 야릇한 전율을 느꼈다.

인도라는 우주 속에는 인간과 신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인생이란 '영원한 긍정 대 부정'이라 한다면, 그들의 세계 속엔 그것들이 뒤바뀐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 너머로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리라는 믿음으로 그들의 신을 찾고 숭상했던 게 아닐까? 영적인 빛으로 충만한 도시 바라나시. 그곳의 시장 골목길에는 파괴와 죽음의 신인 시바를 비롯한 신들을 모신 힌두신전들이 기이한 모습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골목 가득한 향냄새가 사람의 속을 뒤집어놓았으며, 그곳을 찾는 수많은 힌두교도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들이 중얼거리며 풀어놓는 주문 같은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왁자지껄하고도 더러운 시장길 끝. 거기에 갠지스강이 흐르고있었다. 수많은 인도인들이 성스러운 강이라 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재로 뿌려지기를 원한다는 강. 강가의 가트에는 새벽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욕을 한 후에 기도를 하거나 명상을 하기 위해 찾아 든다. 강 저 너머 화장터에서 장작타는 냄새와 함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시원(始原)의 시간을 싣고 강은 말없이 흐르는데,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강은 인간의 시신을 태운 재와 그들이 뿌려놓은 금잔화 꽃잎들과, 시장에서 흘러든 쓰레기로 오염되어 있다.

신화없는 시대. 신화처럼 살아 숨쉬는 검은 대륙, 인도. 왜 세상의 모든 여행자들은 결국 인도로 흘러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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