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직후 각 증권사에 몰아친 대대적인 감원 태풍속에서도 용케 살아 남은 모 증권사 대구지점의 40대 직원. 입사동기 100여명중 단둘이 살아 남은 살벌한 분위기에서 그는 98년말부터 불어닥친 주식 열풍을 타고 월 1천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며 '생존의 기쁨'을 한때 누렸다.
그러나 회사를 떠난 몇몇 동료들에 비하면 수입은 '새발의 피'였다.
서울에서 사설 투자펀드를 설립하거나 인터넷 투자회사를 차린 퇴출 동료들은 코스닥 붐을 타고 작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을 벌어들였다. 이 직원은 "나도 그 때 잘렸으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농경사회의 속담은 정보화 사회인 요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보=돈'의 등식이 위력을 떨치는 지금 서울은 점점 더 '기회의 땅'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반면 정보에 어두운 지방은 '기회의 사막지대'로 황폐화하고 있다.
모두가 서울과 지방간 각종 정보의 엄청난 격차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박찬석 경북대 총장은 사법시험 등 국가에서 실시하는 주요 자격시험을 지역 인구비례로 할당하는 '지역인재 할당제'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잠재력 있는 지역인재를 정보화 및 지식기반 산업인력으로 양성할 수 있도록 지방대학에 투자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정보격차는 IT(정보통신)산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2000년 9월말 현재 첨단업종인 정보처리·컴퓨터업의 경우 수도권(서울·인천·경기)에 약 86%가 몰려 있는 반면 대구는 1.5%, 경북은 0.5%에 불과하다.
연구개발 서비스업도 수도권에 70.6%가 집중돼있고 대구는 1.1%, 경북은 2.8%에 지나지 않는다.
또 전기·전자제조업의 경우 80%가량이 수도권 지역에 몰려있으나 대구와 경북은 각각 1.5%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전국 소프트웨어 업체의 82.7%, 벤처기업의 62.1%, 코스닥 등록 벤처기업의 72.7%,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의 77.7%, 각종 연구소의 62.1%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특히 소프트웨어 업체는 서울이 전체의 78.9%를 차지, 서울 일극 집중체제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은 부산이 5.5%, 대전이 3.1%로 비교적 소프트웨어 산업의 비중이 높았으나 대구는 전국 비중이 1.6%에 불과해 지역 소프트웨어 산업의 낙후성을 입증하고 있다.
지역별 PC보급대수에서도 서울은 인구 1천명당 177.9대인데 반해 대구·경북은 79.5대에 지나지 않았다.
중소기업의 인터넷 통신망 구축률도 서울은 65.3%에 달했으나 대구·경북은 전국 최저에 가까운 22.8% 수준이었다.
정보통신산업의 현황을 길게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서울 등 수도권은 정보통신 등 신산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숨가쁘게 바뀌어 경기침체기에도 충격이 덜하고 회복도 빠르나 경공업과 건설업의 비중이 높은 비수도권은 경기침체때는 불황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회복도 더디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학·기술이 지역경제 발전의 동력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지역간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지역별 정보화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는 IT산업의 현황외에 정보화 마인드·정보생산 및 유통·정보매체 보급·정보이용·정보산업 등을 계량화한 정보화 지수로도 알 수 있다.
지난 97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서울은 정보화 종합지수가 203.9였으나 대구는 81.5, 경북은 56.1이었다.
양병우 전북대 교수는 이와 관련 "지역간 정보화의 격차는 집적하려는 정보수요의 속성상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초래해 정보가 적은 지역이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진 지역에 점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며 "지역 통합이나 독창적인 지역문화의 발전은 고사하고 비수도권 지역 주민들의 삶은 더욱 낙후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역의 정보화사업 투자비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대구시의 경우 시본청과 사업소까지만 공무원 1인당 한대의 PC가 보급됐을 뿐 구·군청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시의 지난해 정보화 예산은 전체 예산의 0.53%인 74억9천300만원이었으나 올해는 0.34%로 비중이 떨어져 47억2천만원으로 줄었다.
이 때문에 시민정보화 사업예산이 없어 공공근로사업으로 대체했을 정도다.
이와 달리 서울시는 지난해 282억원이던 정보화 예산이 올해는 345억600만원으로 증가했다.
최창학 대구시 정보화담당관은 "서울과 비교하면 짜증밖에 안난다"며 "정보화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대구 경북의 시·군·구 정보화 수준도 전국에서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전자신문의 전국 기초단체 정보화 수준조사에 따르면 대구·경북 기초단체중 상위 20위권에 든 시·군·구는 한 곳도 없었다.
반면 수도권 기초자치단체는 4개나 상위 20위권에 포함됐다.
지역의 정보화 뿐 아니라 국제화도 한심한 수준이다.
그동안 변변한 국제행사 한번 개최하지 못해 그야말로 '우물안 개구리'로 지내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구·경북지역민들의 유명한 보수성과 폐쇄성은 지역발전의 장애를 넘어 시대적 추세인 국제화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많다.
서울사람 강성윤(47·전 KDI연구원)씨는 "이너 서클로 똘똘 뭉쳐있어 대구·경북사람들과 사귀기가 쉽지않다"며 "양보하기 보다 내세우길 좋아하고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평했다.
같은 서울사람인 김무환(35·회사원)씨도 "어딜 가나 그룹의 선두에 나서는 등 자질이 뛰어난 대구·경북사람이 많으나 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버릇이 있는 것같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JCI아·태대회, 컨페데레이션컵 축구대회, 월드컵대회, 하계U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가 잇따라 대구에서 열린다.
모처럼 굵직한 국제행사를 앞두고 대구시는 지역민들의 보수성과 폐쇄성으로 이들 대회가 차질을 빚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다.
문희갑 대구시장은 공사석에서 "외부 자극을 통해 대구가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 시민들이 느껴야 한다"며 "각종 국제대회 개최가 지역민들이 외부 세계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더욱이 오는 5월 대구공항 국제선 청사가 완공되고 국제항공노선이 신설될 경우 대구의 국제화는 가속 페달을 밟게 된다.
이같이 밀려오는 국제화의 외적 환경을 계기로 대구·경북 사람들의 '우물안 개구리' 의식 탈피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로 다가오고 있다.
이 시대의 물결을 놓치지 않고 적극적인 의식의 대전환이 있을 때 정보화·국제화시대에 뒤처져 있는 대구·경북도 도약의 기회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조영창기자 cyc1@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