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드컵 이야기(1)(이주녕 축구평론가)

지구촌 최대 축제 한마당인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가 472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1930년 우르과이에서 처음 열린 월드컵 대회는 갈수록 인기를 끌면서 성장을 거듭, 지구촌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잡았다.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동양의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으로 열리는 2002년 월드컵 대회는 대구를 비롯한 한국의 10개도시와 일본의 10개도시에서 6월 한달간 치르게 된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32게임씩 열리는 월드컵 축구대회는 전세계를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 넣는 빅이벤트가 될 것이다.

7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월드컵 축구대회 이야기를 대구지역의 축구원로이자 축구평론가로 활동한 이주녕(73) 전경북축구협회 부회장의 기고로 연재한다. 편집자

◇월드컵 태동

축구가 올림픽 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08년 제4회 올림픽. 아마추어만 출전이 가능했기에 프로 축구계의 불만은 대단했고 따라서 아마와 프로가 함께 출전해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을 가리는 대회의 필요성이 대두, 월드컵 대회가 탄생한 것이다.

월드컵 대회의 역사는 프랑스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드컵 탄생의 결정적 역할에는 프랑스의 두영웅 줄 리메와 들 로네의 역할이 컸다. 줄 리메는 1919년 창설된 프랑스 축구협회 초대회장을 지냈고 37년간 세계축구연맹(FIFA)의 회장직을 맡았던 인물.줄 리메는 양대 조직의 책임자로 줄곧 세계규모의 대회 개최를 모색했지만 아마대회를 주장하는 올림픽지지측과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1926년 FIFA 총회에서 열변을 토한 프랑스 축구협회 사무총장 들 로네의 호소연설로 월드컵 축구대회 탄생은 전환점을 맞게 됐다.

총회때 30개 FIFA회원국들의 표결에서 25개국이 월드컵 창설에 찬성했고 오스트리아와 스웬던·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 등 5개국은 반대했다.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 FIFA는 월드컵대회 개최추진을 강행해 4년마다 올림픽의 중간해를 선택해 개최한다고 선언했다.

첫 대회 개최(1930년)를 발표하자 우르과이와 스페인·이탈리아·네덜란드를 비롯, 월드컵 개최 반대를 외쳤던 스웨덴까지 끼어 들었으나 결국 우르과이가 개최권을 땄다.

1924년과 28년 올림픽에서 축구 금메달을 획득한 우르과이는 참가국의 수송비와 체재비부담의 파격적 조건을 제안했고 여기다 독립 1백주년 기념행사까지 곁들인다는 명분을 앞세워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월드컵 축구대회 개최결실을 본 줄 리메 FIFA회장은 높이 30cm 무게 1.8kg의 순금컵을 기증했고 기증자의 이름을 따 줄리메 컵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개막을 두달 앞두고도 유럽의 어느 국가도 출전신청을 않았고 심지어 FIFA 회장국인 프랑스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우르과이 국민들의 분노는 대단했으나 유럽으로서는 당시 여객기가 없고 배편으로 오가야 하지만 시간이 달포나 걸리는 터라 참가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줄 리메 FIFA회장은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가 먼저 참가신청서를 내게 했고 이어 루마니아와 유고슬로바키아·벨기에를 설득, 출전토록 했다. 결국 첫 월드컵은 남미 8개국과 유럽4개국, 여기에 미국이 참가함으로 모두 13개국이 치르게 됐다. 이로써 제1회 월드컵대회는 축구종주국 영국과 독일·헝가리·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유럽강호들이 빠진 가운데 초라한 미니 세계 선수권대회로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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