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6년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 사고 직후 유행했던 '블랙 유머'가 생각난다. 천국에서 하느님이 천사들과 함께 사람들이 사는 지구를 내려다 보면서 '우리가 아담과 이브를 천국에서 추방한 건 큰 실수였다. 저 봐라. 저 지구의 비참한 꼴을!'이라고 한탄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방사능 중 세슘이나 스트론튬은 아버지대에서 손자대까지 영향을 주며, 플루토늄은 몇 만년씩이나 대지를 오염시킨다고 한다. 불과 200여년 전만 해도 인류는 식품을 통해 전염되는 병원균이나 식중독균에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하지만 그 이후 대부분의 수인성 전염병을 예방.치료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원자폭탄의 위력을 경험한 현대인에게 살상도구나 무서운 유전병을 일으키는 공포의 물질로 기억되는 방사선을 식품에 쬐어 보존 처리하는 '방사선 조사(照射)' 기술까지 등장해 격세지감을 갖게 한다. 최근 식약청은 살균.살충과 발아 억제, 저장 수명 연장 등을 위해 방사선을 쬘 수 있는 조사 식품의 허용 품목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고 한다.
감자.양파.된장.고추장.인삼제품 기존 19가지 품목에서 가공육.계란류.메주.가공식품 제조원료용 곡류 등 18가지를 추가, 허용 품목을 크게 확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난 12월말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데 이어 다음달 식품위생심의위원회를 거쳐 최종 확정할 모양이다.
그러나 국민 식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이같은 정책 변화에 대해 정부가 관보와 관련 단체에만 법안 입안 사실을 알렸을 뿐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아 소비자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방사선 조사 식품의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확대 방침을 유보하고, 거의 유명무실한 이 식품 표시제도에 대한 관리.감독을 더욱 철저하게 하라는 것이 소비자단체들의 요구다.
전문가들은 방사선 조사 기술은 새로이 발효하는 식품의 유해 미생물들을 효과적으로 사멸하면서도 신선도나 영양가를 유지할 수 있게 하며, 안전성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찜찜한 느낌을 버리기 어려운 것은 '왜'일까. 원자력의 공포 때문만일까. 차제에 그렇게 되면 농산물 수출국의 다국적기업들만 배 불리는 결과를 부르지 않을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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