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폭설이 내리던 날

내가 사는 동네에선 어제 아침 여섯 시부터 눈이 내렸다. 그리고 오후 네 시께 날이 개기까지 단 한 순간도 그치지 않았다. 눈은 떡가루처럼 고요하게 내리다가 앞이 안보이게 함박눈이 내리기를 되풀이했다. 눈이 내린다고, 거긴 어떠냐고 전화가 오기도하고 걸기도 하였다. 몇 십 년만의 폭설이니 누구에게나 놀라운 일일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오전 아홉 시쯤 눈에 홀려 산으로 올라갔다. 등산화 끈을 졸라매고 아이젠을 차고 비상식량으로 곶감을 몇 개 주머니에 넣고 갔다.

예전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했었다. 비가 올 땐 그친 다음에, 눈은 시작할 때 떠나야 한다고. 비는 내릴 때 무섭고 눈은 내린 다음이 무섭다는 말일 것이었다. 나는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 설악산 대청봉 아랫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대청봉엔 대개 10월부터 허연 눈 모자를 써서 다음 해 5월까지 벗지를 못했다. 그럴 때 겨울이면 집집의 타작 마당에는 눈을 치워 모아놓은 눈 더미 한군데가 반들반들한 미끄럼이 되어있고 1m가 넘게 내린 눈을 치우지 못해 큰 길에는 사람 하나 다닐 수 있게 뚫어놓아 어린아이들이 걸어다니면 보이지도 않았고 키 큰 어른들의 얼굴만 보일 뿐이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 와서 산지 수 십 년. 그런 눈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 비록 그런 것에는 미치지 못해도 제법 눈 같은 것이 왔다. 방송에선 몇 십 년만의 폭설이라느니 무슨 난리가 났다느니 하면서 사람들의 '피해'에 대해서만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나는 하염없이 내려 담장에 쌓인 눈의 두께를 보면서 봄 가뭄에 대해 생각했다. 눈 치우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아도 예전 내가 어릴 때의 어른들은 마당부터 눈을 치우고 바깥으로 나가 마침내 동네골목으로 나가면 서로들 그렇게 길에서 눈가래를 들고 마주쳤다. 서로 어른이라도 나이가 좀 적으면 나머지는 내가 치겠다고 들어가 쉬시라고 힘든 일을 맡으려 했다. 그리고 즐거운 덕담들을 했다. 이렇게 눈이 풍년이니 내년 농사도 풍년이 들겠다는 것이었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예전 사람들의 삶을 생각했다. 눈이 많이 내려 당장 큰 길이 막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누구네 잔치 누구네 장례가 힘이 들어도 그중 가장 큰 건 일년 농사여서 눈풍년이 가져올 농사풍년에 더 기뻐했다.

그런데 지금은 눈이 주는 당장의 피해에만 호들갑을 떤다. 교통망이 마비되고 시설물이 파괴되었다고 TV 화면은 다투어 그런 것을 보여준다. 지난 설전에 내린 폭설에도 그랬다. 제사 장만이 큰 일이었던 나는 그 보도만을 보고 시금치 나물은 차례상에 올리지 못할 줄로 알았다. 그런데 시금치 값이 얼마나 싸던지. 값이 싸서 도리어 농민들에게 미안했다.

눈이 많이 내린 날 눈이 주는 피해에만 민감한 것은 자연 현상을 적대적으로 보는 시선 때문이고 그런 시선을 만든 것은, 무엇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며 자연을 사람의 욕구에 맞게 '종속'시켜온 문화의 표현이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태도였는지 우리는 머지 않아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다. 우선 광우병만 해도 초식동물이 동물성 먹이를 섭취했을 때 나타난 병이다. '소'라는 자연이 그 자연됨을 거슬러서 생긴 병인 것이다. 물론 소가 스스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 소의 고유한 자연성을 무시한 결과이다.

한 겨울에 히터로 겨울을 모르고 살며 한 여름에 에어컨으로 여름을 모르고 사는 삶이 사람들을 자연치(自然痴)로 만들었다. 자연치의 삶이 결코 사람을 행복하거나 풍요롭게 만들지 못한다는 걸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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