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관 모의수능시험은 '약'일까 '독'일까. 지난 8일 대구지역 대다수 학교들이 모학원에서 실시한 모의수능을 치르자 전교조 대구지부가 '불법'이라고 비난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 새 학기를 앞둔 교육계에 논란이 일고 있다. 실태와 문제점 등을 짚어본다.
▨실태-금지하고 몰래 치르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사설기관 모의수능 응시를 제한하고 나선 것은 지난 99년. 입시과열을 막고 사교육에 의존하는 풍토를 바로잡자는 취지에서였다. 처음에는 학년에 따라 연간 응시횟수를 제한했으나 올해부터는 단 한 차례의 응시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대부분 고교들은 교육부 제한을 넘어 여러 차례 모의수능을 치렀다. 입시를 앞둔 3학년들을 위해서는 수시 평가가 불가피하다는 이유를 내놓았다.
교육부는 보완책으로 교육청 차원의 학력진단평가를 권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교사들의 문제출제능력과 교수법 등을 향상시킨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대구에서는 전국 처음으로 지난해 5월 교장단협의회에서 주관, 3학년을 대상으로 평가를 실시했다. 또 8월에 3학년, 11월엔 1, 2학년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렀다.
지난해 경우 3학년들은 연2회 사설기관 모의수능이 허용됐으나 올해 전면 금지되면서 당장 다음달 모의수능에서 갈등이 빚어질 전망이다. 새 학기 첫 시험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연간 수험전략을 세울 수 있다며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입장과 원칙을 내세운 반대가 워낙 강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응시 찬성-자신의 수준 알아야
대학입시란 어차피 대학과 학과순으로 수험생들을 줄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알아야 지원할 대학과 학과를 가늠해볼 수 있고 준비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3월과 9월 모의수능의 경우 응시생이 50만명을 넘어 실제 수능과 비교해 전수조사에 가까웠다. 준비하는 수험생이나 지도하는 교사나 이 정도의 결과를 근거로 하면 그만큼 쉽다는 것이다.
한 고교 연구부장은 "지역 교사들이 출제, 실시하는 학력진단평가의 경우 응시생이 5만명 정도에 불과해 모집단으로 삼고 활용하기에는 부정확한 측면이 크다"면서 "전국 수험생들과 비교해 내가 어느 수준인지 아는 것은 입시준비에 필수"라고 말했다.
부산, 광주, 대전 등 다른 지역에서는 올해도 모의수능을 거의 무제한으로 치를 것으로 예상하면서 지역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진다는 의견도 많다. 이들 지역은 지난해에도 월1회 정도씩은 모의수능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응시 반대-수업권 침해 심각
전교조 대구지부는 "불법 모의고사로 인해 수업권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금지한 모의수능을 학생들의 동의도 없이 편법으로 치르느라 법정장부인 학급일지와 출석부까지 수업을 한 것처럼 조작하는 것은 너무나 비교육적이라는 주장이다.
아울러 학교교육 정상화와 2002학년도 대입제도 정착을 위해 보충수업과 자율학습, 모의수능을 금지한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학교장 징계 등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점-여전한 줄 세우기
교육부는 지난 98년 2002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을 처음 발표하면서 성적보다 특기·적성을 우선함으로써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의수능 금지 등 그동안의 입시정책 역시 2002학년도 대입제도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그러나 지난 14일 확정, 발표된 대학들의 전형계획을 살펴보면 내신성적과 수능시험의 비중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시모집은 모든 면에서 종전과 별 차이가 없다. 수시모집의 경우 특별전형이 대거 도입되긴 했지만 추천이나 특정 교과목·내신성적·수능성적 우수자 등 성적 위주가 많다.
진학지도 교사들은 결국 한 줄에서 여러 줄로 세분화되긴 했지만 '성적에 따른 줄 세우기'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모의수능을 완전히 치르지 않을 경우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자칫 모의수능을 치르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사설학원으로 몰리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모의수능 제한 직후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모의수능이 한동안 특수를 누린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결국 다양한 선발방법을 근간으로 하는 2002학년도 대입제도가 어떻게 정착돼 가느냐에 따라 모의수능을 둘러싼 논란도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정호상 대구시교육청 교육국장은 "새 대입제도가 정착되면 성적에 매달리는 현상도 가라앉을 것이므로 모의수능으로 인한 갈등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당장 올해 수험생들에게는 곤혹스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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