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시간강사의 애환

"학기 초 교양 강좌 시간에 학생들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대학생들에게 자기 정체성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작 '시간강사'인 나는 누구란 말인가. 능력 없는 가장, 불효하는 아들, 든든하지 못한 남편.... 학생들이나 어떤 사람은 '교수님'이라고 불러 주지만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 줄도 잘 안다. 학교에 가면 교수들에게 치이고, 학생들에게 밀리며, 제도에서도 소외된다. 돈을 잘 못벌어 생활인으로서도 마구 흔들린다" 한 대학 시간강사의 푸념이지만,

이렇게 학문과 생활 사이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대학 강사는 5만5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강의를 찾아 이 대학, 저 대학을 기웃거린다고 해서 '보따리장수'라는 자조적인 표현까지 나온다.

심지어 '등처가' '캥거루족'으로도 불리는 건 아내에게 의지하거나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평소에도 '반실업자'지만 방학 땐 '실업자' 신세가 된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대학 시간강사는 교양 강좌의 59.8%, 전공 강좌의 34.6%를 맡고 있다. 서울대 인문대 경우 지난해 1학기 강좌 929개 중 56%인 516개를, 교양 강좌는 87%를 시간강사들이 맡았다. 이 같이 강사들이 대학 교육의 절반 이상을 떠받치고 있지만 대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생계비도 안되는 강사료(시간당 평균 2만3천210원)에 재직증명서나 신분증 발급이 안되며, 의료보험 혜택도 없는 형편이다. 이들 백면서생(白面書生)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밖으로 밀릴까 두려워 할 뿐 아니라 실낱 같은 희망이 '대학 교수 되기'다.

그러나 교수 자리가 나기만 하면 목을 매기도 해보지만 '하늘의 별따기'며,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기'에 다름 없다. 대학들은 인건비 절약을 위해 시간강사에 의존하는 비율을 해마다 늘리는 실정이며, 교수 1인당 학생수도 39.7명에 이르고 있기도 하다. 고려대 심경호 교수가 '강사 제도 개선 방안'으로 시간강사를 교육법상 교원으로 인정하고, 고용기간을 최소 1년으로 해야 하며, 명칭도 '외래교수'로 바꾸고, 최저 생계비에 준하는 기본급과 방학중 연구비 지급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보도가 보인다.

과연 실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교육 당국이나 대학들의 교수 확충, 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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