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1년 8월 소련의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과 블라디미르 크루치코프 KGB국장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에 대한 쿠데타를 위해 암호통신문을 교환했다. 그러나 그 암호문은 일정한 규칙성을 안고 있어 허술했으며 미국의 암호분석기관이 이를 해독하고 말았다.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은 그 내용을 쿠데타 저지의 선봉에 선 보리스 옐친에게 알려 결국 그 거사는 실패로 끝났다.
'암호의 세계(루돌프 키펜한 지음, 김시형 옮김, 이지북 펴냄, 360쪽, 1만2천원)는 로마를 제국으로 만든 율리우스 카이사르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갈등과 긴장의 세계사 뒤안에서 비밀 유지를 위해 쓰여졌던 암호의 변화와 발전 등을 다루고 있다. 전쟁과 반란, 음모에 수반되는 첩보활동의 전달수단인 암호의 역할과 기법 등을 역사적 사건과 일화 속에서 흥미롭게 살필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세속적 권력에 집착했던 교황들은 각 국의 1급 암호전문가를 모아 첩보전에 활용했으며 17,8세기 유럽의 국가들도 암호전담반을 설치, 암호를 발전시켰다. 1,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과 미국, 일본은 실제 전쟁에 못지 않은 치열한 암호전쟁을 벌였다.
카이사르의 암호방식은 지금의 기준으론 가장 단순하나 암호의 틀을 갖춘 형태. 알파벳 철자에 숫자를 매겨 숫자로 암호를 만들거나 '열쇠말을 만들어 알파벳과 병치시킨 후 빈 공간에 알파벳 철자를 매겨 암호를 만드는 방식이다. 그 외에 왁스를 발라 문자를 숨기거나 평범한 문장 안에 메시지를 숨기는 방식, 은어와 코드북 등 암호의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미국 건국의 공신인 토마스 제퍼슨이 바퀴식 암호기를 발명했는가 하면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는 암호문을 공모, 이를 푸는 것을 취미로 여길 정도로 암호의 세계에 빠졌다.
코난 도일이 창조한 명탐정 셜록 홈즈도 암호를 해독하는 데 특출한 재능을 보인 인물. 이처럼 세계사 속에도 알려지지 않은 암호 전문가들이 등장,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는가 하면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거나 개인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멕시코와 영토 분쟁 중인 미국의 참전을 저지하기 위해 멕시코와 일련의 행동을 계획했다.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의 이 계획은 영국의 '40호실팀의 암호 해독으로 노출, 미국의 참전으로 사태가 역전돼 승패의 결정적 계기가 된다. 현대에도 암호는 더욱 유효하다. 국가와 정부 차원의 암호뿐 아니라 신용카드와 전자 화폐 등의 비밀번호, 은행 계좌번호, 책마다 부여되는 ISBN코드 등 생활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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